원로 재즈 베이시스트 차현 씨(69)는 “박 선생이 발표하기 위해 준비하던 곡 ‘가을의 노래’를 9월 초에 CD와 디지털 음원으로 낼 계획”이라고 25일 밝혔다.
‘가을의 노래’는 차 씨가 작사, 작곡, 편곡해 지난해 박 씨에게 건넨 곡이다. 고인은 지난해 9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차 씨에게서 ‘어느 가을날’이라는 신곡을 받았다. 처음 제목은 ‘디바의 가을’이었는데 너무 민망해 제발 디바(빼어난 여성 가수)란 말을 빼달라고 부탁했다. 열심히 연습해 꼭 CD로 찍어낼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이 인터뷰는 고인의 마지막 언론 인터뷰가 됐다.
고인의 상태가 위중해지자 차 씨는 후배 재즈 가수인 최용민 씨(62)에게 이 곡의 가창 녹음을 대신 부탁했다. 두 달 전 녹음을 마쳤지만 고인은 이미 병환이 깊어져 끝내 완성본을 들어보지 못했다.
25일 기자가 먼저 들어본 ‘가을의 노래’는 고인의 쓸쓸한 퇴장을 예견한 듯하다. 이런 가사로 시작한다.
‘지나가는 그 여름이 아쉬워 가을비가 저리도 오나/찬란했던 젊은 날의 뜨거운 날들 풀잎처럼 시들어 가고….’
빗소리 같은 드럼의 브러시(brush), 고즈넉한 트럼펫 연주로 채색한 애잔한 재즈 발라드다. 차 씨는 이 노래를 담은 자신의 2집 제목을 아예 ‘가을의 노래’로 짓고 앨범 속지에 고인과 찍은 사진 및 작품의 변을 실었다. 그는 “2018년 박 선생의 건강이 악화하는 것을 보고 노래를 하실 수 있을 때 신곡을 취입하게 도와드리고 싶어 곡을 쓰게 됐다”고 했다.
‘가을의 노래’를 담은 차현 2집 표지.
“1989년 그곳에서 재즈를 시작했습니다. 제게 야누스가 없었다면 이렇게 연주자로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20일 박 선생을 마지막으로 뵀는데 대화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으로 맞아주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좀 더 서둘러 곡을 드리지 못한 것이 한(恨)”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재즈를 굳게 지켰기에 쉽지 않을 길을 걸었습니다. 늘 큰누나처럼 씩씩하던 박 선생의 기상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늦어서 송구합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