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8년 만의 정규앨범… ‘부활’ 기타리스트 김태원
19일 경기 고양시 자택에서 만난 김태원. 그가 지난해 장만한 미국 제조사 ‘ESP’의 전기기타를 들어 보였다. ‘Never Ending Story’ ‘사랑할수록’ ‘비와 당신의 이야기’ ‘희야’…. 그는 “그동안 열세 장의 앨범과 노래를 모두 목숨 걸고 냈다”고 말했다. 고양=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9월 초에 싱글 ‘순간’을 낸다. 그리고 12월에 14집을 낸다. 8년 만의 정규앨범. ‘순간’은 수록 곡 중 처음 선뵐 노래다.”
뜻밖에 피아니스트 이루마가 ‘순간’을 김태원과 공동으로 작곡했다. 김 씨의 곡이 90% 이상, 나머지 곡도 멤버들 몫이던 35년 부활 음악세계의 파격이다.
순간의 폭에 관한 앨범이 될 것이라고 했다.
“1초도 안 된다고 봤던 순간의 너비란 대체 어느 정도인가. 거기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중이다.”
계기가 있다. 미증유의 고통이다. 몇 년간 몸이 안 좋았다. 지난해 여름이 피크였다. 뇌가 이상했다. 듣던 음악을 꺼도 왼쪽 귀에서 음악이 계속 들렸다. 급기야 수십 년간 친 기타 코드마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행사장 무대 뒤에서 쓰러졌다. 알코올로 인한 간과 뇌의 쇼크.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그날. 8월 11일이었다. 절망이었다. (김)재기(‘부활’의 옛 보컬)가 떠난(요절한) 것도 1993년의 그날이었으니까.”
“영향은 없다. 나의 (음악) 색이 워낙 확실해서. 쉽게 바뀔 수 없다.”
변수는 따로 있다. 박완규의 복귀다. ‘Lonely Night’를 히트시킨 5집 ‘불의 발견’ 이후 23년 만의 재회.
“늘 완규의 저음이 그리웠다. 몇 년 전 필리핀에서 만났다. 내가 ‘체중을 줄이라’는 숙제를 내줬다. 1년 만에 30kg을 빼더라. 그 정도 의지면 부활의 리드보컬 자리에 부족하지 않다고 봤다.”
10대 보컬 정동하를 2013년 솔로 가수로 떠나보낸 뒤 그는 “(이)승철이가 나갔을 때와 비슷한 슬럼프에 빠졌다”고 털어놨다.
“빠른 곡을 좀 실을 것 같다. 완규가 오니까. 기타 연주곡도 넣고 싶다. 로이 뷰캐넌, 게리 무어의 것에 필적할 곡으로.”
올해 시작한 유튜브 채널 ‘김태원클라쓰’에서 요즘 ‘김태원석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음원 플랫폼 지니뮤직과 함께 비대면 오디션을 열어 원석 같은 아마추어 음악가를 발굴하는 일. 현재 결승을 앞뒀다.
“한편으론 늘 불만이 있었다. 몇몇 방송사와 기획사가 장악한 판에서 외모 같은 기준을 들이대는 스타 제조 방식에. 스스로 음악에 미쳐, 자신의 콤플렉스와 싸우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뮤지션을 보고 싶다. 일곱 살의 순수함을 간직한 이를 뽑고 싶다.”
지난달 엔니오 모리코네가 별세했을 때 그는 친부를 잃은 듯한 아픔을 느꼈다고 했다. 부활 2집에서 영화 ‘옛날 옛적 서부에서’, 10집에서 ‘미션’의 테마를 기타 연주로 재해석했다.
“만난 적은 없지만 내겐 위대한 스승이었다. (레드) 제플린을 알기 전에 모리코네가 있었다. 그의 정서와 선율, 삶과 음악이 다 내 길잡이였다.”
배우로 치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의 역할모델이다.
“그가 손대면 어떤 작품에도 격이 생긴다. 그런 삶을 사는 것이 남은 꿈이다.”
김 씨는 어쩌면 아직 삶의 황량한 서부 어딘가를 거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양=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