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경기 안성 죽산면 죽산초교에 설치된 이재민대피소에 시 공무원들이 텐트를 추가로 설치하고 있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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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채 다 죽었어, 월급을 사모님도 몰라요. 사장님 돈 없어, 우리 돈 없어. 방도 젖고, 전기도 없고.”
4일 오후 경기도 이천 율면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대피소. 전체 입소자 72명 중 외국인이 50명이다. 인근 율면고교 이재민대피소는 입소자 30명이 모두 외국인이다.
캄보디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비살(33)도 수해를 입고 지난 2일에 율면 실내체육관에 왔다. 이들이 머무는 4인용 연두색 텐트의 문 옆에는 소속 농장과 이름이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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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부터 하우스 물이다 들어와요, 안에 비가 안에 엄청 많이와요. 방에 거기 다 위에 올렸어요. 사장님이 가라고 해서 왔어요” 비살의 말이다.
율면 실내체육관 이재민대피소의 외국인노동자 대부분은 낮 시간이라 다시 일을 하러 나갔지만 비살과 비살의 동료들은 대피소에 남아있었다.
비살은 “다른 농장엔 일이 있는데 우리 농장엔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야채가 다 죽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월급은 어떻게 받냐고 묻자 “월급은 사모님도 모른다”고 했다. 월급이 걱정되냐는 질문에 “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살은 화장실이 부족하지만 대피소 생활은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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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노동자 16명을 고용한 또 다른 농장주 김모씨(50대)는 “외국인노동자들과 10년씩 같이 일했다”며 “이런 일이 있다고 어떻게 자르겠나. 같이 정리하고 이겨내야지”라고 말했다.
율면 실내체육관에는 대한적십자사 봉사자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민호기(58)·최광수(52)·이정근(67)·정환필(64)·박성만씨(58)는 지난 2일부터 이곳에서 텐트 등을 설치하며 도움의 손길을 전했다.
지난 22년간 봉사시간 1만시간을 채웠다는 정씨는 “남에게 봉사를 하면 기쁜 마음이 생긴다”고 말했다. 지난봄 이천 물류창고 화재 당시에도 정씨 등은 발벗고 나섰다.
정씨는 “(대피소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니) 옛날 우리 60년대가 생각난다”며 “안타깝고 짠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도울 수 있어서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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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종옥(63)씨는 나가지 못했다. 아흔에 가까운 노모를 보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군포에 사는 이씨는 어머니의 집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1일 안성에 달려왔다.
어머니가 54년 전 쌀 40가마니를 주고 살아온 집이라고 했다. 이씨는 “54년 삶의 터전이 날아갔다. 집을 고치는 게 아니라 아예 새로 지어야 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머니가 많이 허망해하신다”면서 “저도 어릴적 추억이 없어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텐트 안에서 이씨 어머니가 몸을 돌아 누으며 뒤척였다.
집은 이씨의 조카와 아들이 살피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어머니를 병원이나 호텔에 모시려고 해도 좀체 여기를 떠나지 않으려 하셔서 다른 곳에 갈 수 없다”며 걱정스러워했다.
안성시에서는 공무원을 투입해 텐트를 추가로 설치했다. 안성시 관계자는 “오늘만 해도 5명이 더 입소하겠다고 해서 이재민이 더 늘어날 수 있으니 텐트를 설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천·안성=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