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당 독재 끝내고 직선제 도입, ‘미스터 민주주의’ 별명 얻어 임기말 독립 주장해 본토와 마찰
‘대만의 미스터 민주주의’로 불리는 리덩후이 전 총통이 30일 향년 97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리 전 총통이 퇴임 후인 2005년 3월 대만 남부 가오슝에서 열린 반(反)중국 집회에 참여한 모습. 가오슝=AP 뉴시스
대만 중앙통신사 등에 따르면 타이베이 롱민쭝(榮民總)병원은 리 전 총통이 이날 오후 7시 24분(현지 시간) 숨졌다고 밝혔다. 그는 2월 폐렴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고, 최근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리 전 총통은 장제스(蔣介石·1887∼1975)의 아들인 장징궈(蔣經國·1910∼1988)에 이어 1988년부터 2000년까지 대만 총통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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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총통 재임 시절 국민당 독재를 끝내고 다당제와 총통 직선제를 도입했다. 1996년에는 직선제 방식으로 처음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 승리해 대만 국민이 직접 뽑은 첫 총통이 됐다. 대만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1989년 중국에서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벌어졌을 때 긴급 성명을 내고 “중국공산당이 택한 비인간적인 행동은 장차 반드시 역사의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중국 본토가 아닌 대만 태생인 그는 중국 본토에 뿌리를 둔 국민당 출신 총통이었으면서도 임기 말년에는 중국과 대만이 각각 별개의 나라라는 양국론(兩國論)을 주장했다. 이 때문에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이들로부터 ‘대만의 아버지’라 불렸으나 중국 본토는 그를 ‘대만 독립 세력의 수괴’라면서 맹렬히 비난했다.
리 전 총통은 중국과는 크게 갈등을 겪으면서도 일본에 대해서는 ‘친일’에 가깝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호의적인 성향을 보였다. 퇴임 후 2007년 6월에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해 대만 내에서조차 비난을 받았다. 야스쿠니신사에는 일본군 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전사한 친형의 위패가 있다. 당시 리 전 총통은 “헤어진 형을 만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개인적인 일”이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리 전 총통의 유족으로는 부인 쩡원후이(曾文惠) 여사와 두 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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