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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점폭탄 피하려면 회사 쪼개란거냐”

입력 | 2020-07-24 03:00:00

엔지니어링 ‘부실 벌점제’ 개정안 반발




“벌점을 줄이려면 회사를 쪼갤 수밖에 없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올해 초부터 추진하는 건설공사 벌점제도 개편을 두고 엔지니어링 업계에서 반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명무실했던 벌점제의 실효성을 높여 안전사고와 부실시공을 막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정부 방침대로 벌점을 단순 합산하면 규모가 큰 업체들일수록 많은 벌점을 받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벌점은 정부나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 입찰 시 감점 요인이 되기 때문에 엔지니어링 업계에서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여기고 있다.

논란은 국토부가 올해 1월 벌점 산정 방식을 개편하는 내용의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다. 기존에는 반기마다 한 건설업체가 받은 벌점을 공사나 용역 건수로 나눠 평균 점수를 산정했는데, 앞으로는 공사 및 용역 건수를 따지지 않고 합산하기로 했다. 공사 100건을 진행하는 업체가 벌점을 10점을 받았다면 기존에는 0.1점인데, 앞으로는 10점이 된다는 뜻이다.

국토부는 이런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가 대형 건설사의 불만이 높아지자 벌점을 경감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해 5개월 만에 재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엔지니어링 업체들은 경감 혜택이 미미해 실효성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재개정안에 따르면 별점 경감 방법은 두 가지다. 일정 기간 사망사고가 없으면 벌점을 최대 59%까지 경감해 준다. 정부의 현장점점 결과 관리가 우수한 업체들에도 벌점 0.2∼1점을 깎아주기로 했다. 그런데 사망사고 벌점의 경감 폭이 큰데 이는 오로지 시공사들에만 적용된다. 대형 건설사들은 벌점을 충분히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기자 재개정안에는 더 이상 반발하지 않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엔지니어링 업체들에 부과하는 벌점 기준을 기존보다 덜 엄격하게 바꿔 시공사에 비해 경감 효과가 오히려 더 크다”고 해명했다. 부실시공이나 안전관리에 소홀한 게 드러나면 시공사에 벌점을 주더라도, 설계와 감리를 담당한 엔지니어링 업체가 법적 의무를 다했다면 벌점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뒀다는 얘기다.

하지만 엔지니어링 업계는 그럼에도 벌점으로 인한 불이익을 피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부실시공이나 안전사고와 관련해서 받는 벌점보다 계측 오류 등 사소한 실수로 인해 벌점을 받는 경우가 훨씬 더 잦기 때문이다.

한 대형 엔지니어링 업체 사장은 “벌점 0.1점으로 입찰 당락이 좌우된다”며 “현행대로 벌점제가 바뀌면 대형 업체들은 국내에서 공공 입찰을 따내기 힘들어 해외 진출에도 비상이 걸린다”고 강조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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