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다수제 하에서 유권자들은 ‘내가 좋아하는 후보’를 선택하기보다는 ‘이길 것 같은 후보’를 선택하게 된다. 내가 던지는 표가 ‘사표(死票)’가 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2개의 당이 과점하는 정치 환경 속에는 좋아하는 다른 후보가 있어도 양당의 후보 중 무조건 한 명은 선택하게 된다. 만일 한쪽 정당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선거구에 살고 있다면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없다. 결국 정당은 유권자의 불만과 변화 요구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고, 정치는 유권자와 괴리된다.
그래서 포터 교수와 동료 연구자들은 이 논문에서, 국회의원 ‘5인 결선투표제’를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먼저 정당 소속에 관계없이 예비투표(프라이머리)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상위 5명이 결선에 진출한다. 결선 투표에서는 반드시 50% 이상을 득표해야만 당선되는데, 그런 사람이 없는 경우 꼴찌부터 하나씩 탈락한다. 이때 꼴찌에게 표를 던졌던 유권자들이 2순위로 선호하는 후보에게 표가 자동으로 추가된다. 이렇게 한 명의 후보자가 과반의 득표를 할 때까지 표의 재배분이 연쇄적으로 진행되어, 결과적으로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는 사람이 당선되게 된다. ‘사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
다시 말해 투표방식이나 경선제도, 정당리더십이나 입법과정의 개선은 물론 중요하지만 제도나 경쟁구조를 변화시키면 정치의 혁신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거라는 기대는 대체로 실망과 회의감을 낳기 마련이다.
올 4월, 우리가 한국에서 경험한 위성정당 사례도 다르지 않다. 2019년 말, 20대 국회의 임시회기를 하루 남겨두고 거대 양당 중심의 과점 정치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국회의원 300명 중 47석의 비례대표 수는 유지하고 그중 30석에만 정당득표 비율의 50%를 연동한다는 의미에서 준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이름이 붙었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제도를 설계할 때는 다당제 경쟁구조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지만, 실제로 진행해보니 거대 2당이 비례대표 선거만을 위한 위성정당들을 만들면서 다른 당들의 의석수는 더 줄어들었다. 선거제도 변화를 통해 다당제의 새로운 정치 경쟁 구조를 만들고자 했던 한국의 실험은 그렇게 실패했다.
결국, 정치 시장의 변화는 일정한 답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그 방법이 명확한 것도 아니다. 다만 어느 한 방향으로 경쟁구조가 고착되거나 민주주의 근간인 유권자의 권리가 차단되지 않도록 게임의 룰을 개선해 가야 하며, 동시에 항상적인 경쟁과 불확실성을 유지하는 동적 과정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현재 미국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 시스템 변화의 노력은 큰 의미가 있다. 다만 시스템의 변화를 주장하기 위해 마치 기존의 정치적 구조와 행태를 무지의 소산이자 비민주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우(愚)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 한국어판 2020년7∼8월호에 실린 ‘정치 시장의 경쟁 환경은 기업 시장과 다르다’를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이강원 변호사·정치 컨설턴트 giantalex@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