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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 50곳 넣어도 알바조차 못구해… “내 자린 없는건가요”

입력 | 2020-06-08 03:00:00

[코로나 세대의 절망]‘좁아진 취업문’에 먹고살 길 막막




대학 휴학생 김모 씨(20)는 최근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 위해 50여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합격 문자를 놓칠까 시도 때도 없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봤다. 하지만 연락이 온 건 단 3곳. 그마저도 “손님이 줄어 아르바이트가 필요 없어졌다” “다른 사람을 채용했다”는 문자메시지였다.

결국 김 씨는 최근 한 물류센터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김 씨처럼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해 찾아온 청년이 대다수였다.
○ ‘IMF 세대’보다 절망적인 ‘코로나 세대’
김 씨 부모님은 미용용품을 판매하는 자영업자다. 지난해부터 가게 사정이 나빠졌다. 김 씨는 스스로 생활비를 벌 생각에 올해 초 휴학을 결심했다. 처음 운 좋게 중소 마케팅 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절반 넘게 줄어들자 회사는 직원들을 해고했다. 김 씨를 포함해 8명이 잘렸다. 김 씨는 “가능하면 학교에 돌아가지 않고 바로 취업할 생각이었다”며 “이제는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수도권 4년제 대학의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취업준비생 손모 씨(32)는 네이버 같은 정보기술(IT) 기업 취업이 목표였다. 쉽지 않은 목표인 만큼 연이은 불합격에도 3년 넘게 묵묵히 준비했다. 중소기업에 이력서를 넣어 합격한 적도 더러 있었지만,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입사를 번번이 포기했다. 하지만 더 이상 목표를 향해 가는 게 불가능해졌다. 이제는 중소기업 합격이라도 기대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코로나19 유행이 끝나도 고용위기가 한순간에 회복되지 않을 거란 생각에 눈을 낮췄지만, 이미 상황은 지난해와 180도 달라져 있었다. 손 씨는 “공채에서 떨어질 때마다 고지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끝없는 터널 한가운데 있는 듯한 좌절감을 견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대에 못 미치는 월급을 받더라도 어디든 가야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중소기업도 코로나19 여파로 채용을 줄이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올 4월 중소기업이 일자리 포털 ‘워크넷’에 등록한 채용 규모는 지난해보다 35.9% 감소했다. 중소기업 취업을 준비 중인 조모 씨(29)는 최근 약 30개 중소기업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한 곳만 서류전형을 통과했다. 하지만 직원 2명을 뽑는데 80명이 넘는 면접자가 몰렸다. 조 씨는 “나 같은 중소기업 취준생은 박람회라도 열려야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이마저도 대부분 취소돼 막막하다”고 했다.
○ “티슈 인턴이라도 가야 하나요?”
코로나19로 인한 청년들의 취업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대책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커녕 불안정한 고용만 지속시킨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3차 추가경정예산안에 포함시킨 ‘청년 일 경험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는 인턴을 채용하는 중소·중견기업에 6개월간 월 최대 80만 원씩 인건비를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도 정부는 비슷한 사업인 ‘중소기업 청년 취업 인턴제’를 도입했다. 청년실업을 해결하려는 취지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인턴 참가자 대부분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 2016년 감사원은 이 제도에 참여하는 청년이 정규직으로 고용될 확률(64.3%)이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청년에 비해 1.1%포인트가량 낮다고 지적했다. 정부 지원이 끝나면 잘리는 ‘티슈 인턴’이었던 셈이다.

악용 사례도 적지 않았다. 2015년 이 제도를 통해 10인 규모 디자인 회사의 인턴으로 일한 A 씨(31)는 “정부 인건비 보조를 받으려면 최저임금 이상 월급을 줘야 하는데, 나는 최저임금 미만으로 이면계약을 하고 차액을 회사에 돌려줬다”고 말했다. 그는 “경력을 개발하기는커녕 잡무만 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문제로 2017년 폐지된 사업이 코로나19를 계기로 부활한 것이다.

IT 직무에 청년을 채용하면 인건비를 주는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 역시 단기 일자리 위주다. 기존 청년 고용 대책과 달리 이 사업엔 정규직 고용 조건이 빠졌다. 기업에 정규직 채용 여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는 “정규직 조건이 삭제된 채용 지원은 한발 후퇴한 고용 대책”이라고 말했다.

주무현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사업본부장은 “단기 일자리 위주의 청년 일자리 대책은 노동시장 진입을 촉진하기보다 청년들을 일자리 프로그램에 머물게 할 수 있다. 오히려 장기 실업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혜미 1am@donga.com·박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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