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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인에도 들불처럼 퍼진 김정은 ‘신변 이상’…‘인포데믹’ 때문

입력 | 2020-05-03 08:43: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잠행’ 행보 그래픽. © News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일간의 잠행을 끝내고 건재한 모습을 과시하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4월 11일 평양에서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이후 자취를 감췄던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간 ‘혼자 걷지 못하는 상태’, ‘식물인간 상태’, ‘이미 숨을 거둔 상태’, ‘사망 확률 99%’라는 온갖 추측과 출처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설(說)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2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가 공개한 김 위원장의 순천린(인)비료공장 준공식 참석 사진과 영상의 모습을 보면 김 위원장은 건강에 이상이 없는 모습으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으며, 거동이 불편한 흔적은 어디에도 포착되지 않았다.

오히려 간부들에게 무엇인가 지시하는 액션을 취하거나 직접 준공 테이크를 끊고, 공장을 둘러보는 등 활동적인 모습이 포착됐다.

이러한 김 위원장의 모습은 전 세계를 들썩였던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나 ‘사망설’을 한 번에 일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처음 제기된 이유는 지난 4월 15일 집권 이후 처음으로 김일성 주석의 생일(태양절)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으면서다. 당시 이러한 행보가 매우 ‘이례적’이라는 정부와 전문가의 판단이 나왔고 이에 다양한 설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김 위원장이 태양절 전날인 14일 순항미사일 시험 발사 현지지도에 나갔다가 사고가 있었을 것, 모습을 드러내지 못할 정도의 건강 이상 등 신변에 일시적인 이상이 발생했을 것 등의 자세하지 않은 추정이 나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금수산 궁전을 참배를 하지 않는 것은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의 ‘선택’이고 이 또한 정치적 메시지가 담길 수 있는 것으로 현실적으로는 그 이유에 대해 누구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 이후 부정확한 뉴스와 관측들이 쏟아져 나왔다.

건강이상설이 구체화된 계기는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가 4월 20일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4월 12일 평안북도 묘향산 지구 향산 진료소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고 향산 특각에서 치료 중이라는 내용을 보도하면서다. 이어 21일 미국 CNN 방송이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 수술 후 위중’ 보도를 냈다.

이 두 뉴스에 대해 우리나라와 미국 정부는 사실상 부인하는 입장을 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데일리NK 보도에 대해 “북한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봤을 땐 가짜뉴스라고 판단된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23일 CNN의 보도에 대해 “부정확하다”라고 발표했다.

뒤이어 국내 탈북민 출신 정치인들과 각종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들은 모닥불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탈북자 출신 지성호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당선인은 지난 4월 21일 “김 위원장은 다시 복귀하기 어려우며 현재는 섭정 체제에 들어갔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어 전날인 1일까지도 지 당선인은 “김 위원장의 사망을 99% 확신한다”며 “김 위원장이 심혈관질환 수술 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지난 주말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했다”라고 거듭 주장했다.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 출신 태영호 미래통합당 당선인도 지난 4월 27일 미국 CNN방송과 인터뷰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들 발언은 인터넷 포털 뉴스 메인을 장식하는 것에 이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과 유튜브 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잘못된 정보나 악성루머가 미디어나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현상인 ‘인포데믹(악성정보확산)’ 앞에 우리 정부도 이례적으로 북한 최고지도자의 동향에 대한 공식 발표를 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관련 정보를 종합해 김 위원장과 북한과 관련해 “특이 동향 없음”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김 위원장이 머무는 곳이 평양이 아닌 지방이라는 가능성까지 함께 암시하는 등 무분별한 악성정보확산 현상을 진화하고 나섰다.

청와대는 물론 대북 주무부처인 통일부, 국방부, 외교부 등이 나서 “북한 내 특이 동향이 없다”면서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을 사실상 부인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북한이 20일 동안 반응을 보이지 않은 점도 의혹을 증폭시켰다. 북한은 매체를 통해 김 위원장이 북한 내 특정 주민에게 생일상을 전달하고, 시리아 대통령과 축전을 주고받고, 삼지연시·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일꾼들과 근로자들에게 감사를 전달한다는 ‘서한 동정’ 소식만 보도하고 모습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 같은 대북 정보의 악성정보확산 현상에 대한 우려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통일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과 관련,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조만간 나타날 것이라고 예고해 온 그대로일 뿐”이라면서 “앞으로도 북한과 관련한 정보에 대해서는 분명한 근거를 토대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북한과 관련한 가짜뉴스가 한반도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잘못된 정보가 유포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때론 남북관계. 대북정책, 대외정책 국방안보정책, 남남갈등, 경제분야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 건강 이상설의 무분별한 확산으로 인해 가짜뉴스가 단순히 개인이나 집단에 미치는 해악의 차원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실질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면서 “확인되지 않은 뉴스가 무분별하게 양산되면서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 관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기에 이번을 계기로 북한과 관련한 가짜뉴스가 여러 분야에 미치는 영향, 대응 방향 등을 검토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