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벨라스케스 ‘비너스의 단장(로크비의 비너스)’ 1647∼1651년경.
그림 속 누드의 여성은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큐피드가 든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비록 뒷모습이지만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 희고 매끈한 피부를 가진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비너스다. 물론 관점에 따라선 남성의 관음적 시선으로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한 외설적인 이미지일 수도 있다. 그림이 그려졌던 당시 스페인에서도 여성의 나체는 금기시된 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류층 남성들은 암암리에 누드화를 주문하고 수집했는데, 이는 누드화가 일종의 소프트 포르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리처드슨도 하루 종일 이 그림 앞에서 입을 벌리고 바라보고 있는 남성들을 비판한 바 있다.
그녀의 행위는 전 국민의 공분을 산 명백한 범죄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영국 사회에 의외의 결실을 가져왔다. 사건 이후 여성 참정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져 1918년 처음으로 30세 이상 여성이, 1928년엔 모든 성인 여성이 투표권을 가지게 됐다. 심하게 훼손됐던 그림도 복원에 성공해 영국 미술품 복원 기술이 한층 진일보하는 계기가 됐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