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디’에서 비극적 삶 조명… 행복은 최선보다 적당함에서 온다
서정보 문화부장
영화에서 인상적인 대목이 적지 않았지만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을 꼽으라면 젊은 주디(다시 쇼)가 무대를 바라보던 모습이다.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고 무대 뒤로 돌아온 주디는 관객들의 연이은 ‘앙코르’ 환호를 듣는다. “이제 떠나야 한다”, 즉 공연도 끝났으니 우리끼리 즐기러 가자는 동료의 말에 주디는 잠시 망설인다. 이어 커튼 뒤에서 살짝 무대를 보던 그녀가 황홀경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화면 가득 번진다. 주디는 “나중에”라는 말을 남기고 무대로 뛰쳐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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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행복연구센터(센터장 최인철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대한민국 행복지도 2020’을 펴냈다. 2017년부터 카카오와 협력해 서비스한 ‘안녕지수’에 매일 사람들이 응답할 수 있도록 했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행복 수준을 분석했다. 2019년에만 150만 명 가까이 참여했고, 288만 건의 데이터를 수집했으니 신뢰도가 낮진 않을 것이다.
여기서 자신은 행복하다고 느낀 사람들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①스스로를 (객관적인 계층보다) 높은 계층이라고 여긴다 ②행복은 운명이라 여기지 않는다 ③바쁜 삶을 선호하지만 마음속 여유가 있다 ④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⑤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만족을 느낀다 등이다.
이에 따르면 행복은 주어지거나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라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 길이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다섯째 항목처럼 선택에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보다는 합리적인 선에서 만족하고 다른 일로 넘어가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최상의 선택을 하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처럼 여겨지지만 모든 선택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면 삶은 불안해진다.
영화에서 무대에 오르는 것이 걱정되지 않는다는 딸의 말에 어안이 벙벙한 느낌으로 바라보는 주디의 표정에서 무대에선 항상 최고이고 싶었던 그의 불안함이 엿보인다. 주디의 딸이자 연기자로 아카데미상까지 수상했던 라이자 미넬리는 훗날 “어머니가 약물과 술에 중독돼 있으면서도 무대에만 올라가면 달라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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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행복지도 2020’에 따르면 대한민국 사람들은 현명하게도 40대부턴 행복은 운명적으로 결정돼 있다는 ‘행복 본질주의’에서 차츰 벗어나 노력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믿는다.
주디가 주연한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제가 격인 ‘오버 더 레인보’의 후렴구는 이렇게 끝난다.
‘why can‘t I?(왜 나라고 할 수 없겠어요?)’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면 된다.
서정보 문화부장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