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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100인의 ‘두 번째 돌잡이’]육아휴직 중 코로나 전장으로… 아버지 이어 화재 현장으로…

입력 | 2020-04-03 03:00:00

[창간 100주년 기획/청년 100인의 ‘두 번째 돌잡이’]
<하> 공익에 미래 건 청년들




“대구 상황을 듣고는 도저히 그냥 지켜볼 수가 없었어요. 육아휴직을 하고 있었지만, 전 간호사잖아요….”

세상이 평온했다면 한 살배기 딸을 보살폈을 시간. 지금 간호사 구기연(27)은 대구의료원에서 자원봉사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지난달 4일부터 이어진 강행군. 의료용 보안경에 짓눌려 불그스름해진 뺨은 가라앉질 않는다. 체력도 이미 바닥났지만 오늘 또 한번 다짐한다.

“그래, 이게 나야. 내가 할 일은 이거였지.”

흔히들 얘기한다, ‘요즘 청년’은 자기만 안다고. 1980년대 후반부터 태어난 이들을 개인주의 세대라 부르기도 한다. 청년들도 그런 면이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공익적 가치’도 소중히 여긴다. 동아일보가 만난 19∼34세 청년 100명 중에는 “개인보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이가 수두룩했다.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는 데 미래를 걸고 있다.

○ 유니폼 입은 청년들 “나보다 우리 위해”

실은, 기연은 한때 간호사 유니폼을 벗으려 했다. 일부 환자의 거친 막말, 열악한 근무 여건. 모든 게 버거웠다. 한데 사투를 벌이는 환자와 마주할 때마다 그들을 치료하고 위로하는 게 천직이라 자신을 되잡았다. 그는 “내 생애 두 번째 돌잡이에서 선택하고픈 건 간호사용 흰 양말”이라며 “코로나19를 겪으며 더 굳건해졌다. 언제나 환자 곁을 지키는 간호사가 되겠다”고 했다.

“언제 다친 건지 모르겠네요. 의식 없는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이런 일이 너무 많아서….”

외상외과 전공의 최은지(31). 팔엔 시퍼런 멍 자국이 선명했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일하는 은지는 중환자실 환자가 허우적대던 손에 부딪혔던 것 ‘같다’고 했다. “일상이다. 대수롭지 않다”며 하하 웃어넘겼다.

은지는 수련의 시절 ‘인기 없는’ 외상외과를 딱 찍었다. 외상센터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똘똘 뭉쳐 생명을 구하는 광경에 맘을 뺏겼다. 그래서일까. 두 번째 돌잡이에서 청진기를 고를 줄 알았더니. 망설임 없이 ‘항공재킷’을 집어 들었다.

“헬기로 이송하는 환자를 받을 때 입어요. 재킷을 볼 때마다 속으로 되뇌곤 해요. 단 한 명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언젠간 미국 외상센터에서 선진 시스템도 배울 거예요. 대한민국의 외상센터 수준을 더욱 높일 겁니다.”

새내기 소방대원 최순재(25)는 ‘방화복’을 두 번째 돌잡이 아이템으로 골랐다. 뻔해 보이는 거 안다. 근데 순재는 아버지도 소방관이다. 아버지는 “넌 소방관이 딱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임용 한 달 차인 순재는 “방화복을 입고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만능 소방관’이 되겠다”고 했다.

해병대 연평부대 포7중대 전포대장. 중위 손남일(26)은 2010년 북한 연평도 포격 도발을 계기로 군인의 길을 결심했다. 당시 중3이던 남일은 “포탄의 위협에도 나라를 지키는 해병대 눈빛을 보고 심장이 펄떡거렸다”고 떠올렸다.

“두말할 것 없습니다. 두 번째건 세 번째건, 돌잡이를 한다면 언제든 주저 없이 ‘빨간 명찰’(해병대 상징)을 고를 겁니다.”

○ 화려하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은

환경과 인권은 추상적이다. 당장 ‘먹고사니즘’(먹고사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주의)과 상관없어 보인다. 하지만 공동체가 지속하려면 지켜내야 할 공익적 가치다.

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 유지연(29)은 ‘소풍용 돗자리’로 미래를 내비쳤다. 돗자리 깔고 숲과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낙이란다. 한데 요즘 대기오염과 감염병 탓에 그마저 쉽지 않다. 지연은 “평범하지만 갈수록 평범할 수 없는 일상. 자연을 벗 삼아 누리는 세상을 다음 세대에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청년에게 정치만큼 외면받는 영역도 없다. 하지만 국회에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애쓰는 젊은이들이 있다.

‘청년의 희망’을 정치에 담고 싶다. 국회의원실 비서관 신수낭(29)의 꿈은 경제적 사회적 기반이 취약한 학생도 얼마든지 도전할 기회를 얻는 학교를 세우는 일이다. 수낭은 “입법 과정을 배우며 여러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5년 내 실행에 옮기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의원실 비서관 박가현(30)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의미 있는 일을 하려 한다”며 “뭣보다 ‘잘 듣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부터 오늘이 내 생일입니다, 당신 덕에 다시 태어났으니.”

공익변호사 이현서(30·화우공익재단)는 영원히 이 말을 잊지 못하리라. 정치 박해를 피해온 에티오피아 출신 A는 2018년 여름 기나긴 소송 끝에 ‘난민’ 지위를 얻은 뒤 현서의 손을 맞잡았다. 오랜 구금생활로 손톱마저 다 빠졌던 그에게 대한민국의 난민 인정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었다. 현서는 A 같은 외국인 약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4년간 달려왔다. 두 번째 돌잡이에선 ‘복싱 글러브’를 꼽았다. 링에서 쓰러질지언정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 “자기 희생 아닌 내 행복 찾기… 퍼라밸 가능합니다” ▼

코로나맵 스스로 좋아서 만들고 공익사업 창업해 수익 창출도

‘공익을 위한 삶’은 힘들고 무거워야 할까. 청년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참신하고 개성 있게 ‘퍼라밸(the public and life balance·공익과 삶의 균형)’을 일굴 수 있노라 자신했다.

컴퓨터프로그램 개발자 이동훈(27). 그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국내 현황을 알려주는 지도 서비스 ‘코로나 맵’을 만들었다. “감염병에 대한 시민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여주려는” 마음이었다. 수익보다는 선한 영향력을 우선순위에 뒀다.

동훈은 “군대에 있을 때 프로그래밍을 독학으로 공부했는데 사회에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어 즐겁다”며 “서른 되기 전 ‘코로나 맵’ 같은 가치 있기에 행복한 프로젝트를 한 번 더 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군에서 밑줄 치며 읽었던 ‘프로그래밍 책’이 두 번째 돌잡이 아이템이다.

비즈니스로 공익을 실현하는 청년도 있다. 이른바 사회문제를 해결하며 수익도 창출하는 ‘소셜 벤처(social venture)’다. 공유주거회사 ‘만인의꿈’의 비즈니스 오퍼레이터인 박비(33)는 청년주거 문제를 ‘셰어하우스’ 사업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그는 장애인도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서비스하는 회사를 창업한 경험이 있다. 비는 “어떤 고객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인다는 뜻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지니고 다닌다”고 했다.

“세상은 화려하고 능력 있는 ‘주인공’만 주목하죠. 제 만화에선 ‘찌질이’ 소리 듣는 캐릭터들도 멋진 주인공이 될 수 있어요.”

네이버 인기 웹툰 ‘랜덤채팅의 그녀!’를 그리는 작가 박은혁(26)은 사회에서 소외된 ‘언더도그(underdog·약자)’에 꽂혔다. “실패와 좌절을 겪은 수많은 청년 언더도그에게 만화로 토닥거림을 선물”하고 싶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기며 사회에 기여하는 셈이다. 은혁의 돌잡이 아이템은 ‘모나미 볼펜’. 미대에 응시했다 쓴잔을 마신 기억을 떠올렸다. 그 시간을 함께한 볼펜으로 습작을 거듭해 웹툰 작가로 데뷔했다. “짧은 순간이라도 독자에게 웃음과 위로를 주는 만화.” 그가 이루고픈 현재이자 미래다.

특별취재팀
팀장 정양환 사회부 차장 ray@donga.com
조건희 김소민 신지환(사회부) 김수연(정책사회부)
김형민(경제부) 신무경(산업1부) 김재희(문화부)
김은지(산업2부) 조응형(스포츠부) 홍진환(사진부)
이원주 기자(디지털뉴스팀)

청년 100명이 꿈꾸는 100가지 미래, 모바일(http://www.donga.com/news/y100)로 모두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