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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없는 기다림… 훈련보다 힘드네요”

입력 | 2020-03-23 03:00:00

현대캐피탈 42세 여오현 ‘휴식 아닌 휴식’
매일 소리치고 훈련 쉰 목소리 달고살아
허리 디스크로 오른쪽 다리 불편하지만 리그 재개 손꼽으며 동료들과 구슬땀
무관중-경기수 줄이더라도 PS 치렀으면




현대캐피탈 베테랑 리베로 여오현이 충남 천안시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에서 열린 팀 훈련 도중 수비 자세를 점검하고 있다. 남녀를 통틀어 프로배구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여오현은 리그 일정 중단 전까지 서브 리시브 성공률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현대캐피탈 제공

“참 오래가네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여오현(42·현대캐피탈)의 목소리에서는 여전히 쇳소리가 났다. 코트에서 제일 크게 파이팅을 외치다 보니 프로배구 시즌 내내 그의 목소리는 항상 잠겨 있다. ‘3주 가까이 쉬었는데도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자 그는 “경기가 없어도 똑같이 열심히 소리치며 훈련해서 그렇다”고 답했다.

여오현이 참 오래간다고 말한 건 두 가지. 첫 번째는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고, 두 번째는 허리 디스크다. 여오현은 1월 21일 한국전력과의 경기를 앞두고 2, 3번 허리 디스크가 찢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코로나19로 사회 전체가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지만 아픈 허리를 안고 뛰는 프로배구 최고령 선수가 예상치 못한 휴식기를 얻은 건 그래도 반가운 일 아니었을까.

시즌 중 허리 디스크가 찾아온 여오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리그 일정이 멈춘 사이 허리 근육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캐피탈 제공

충남 천안시에 있는 팀 복합 베이스캠프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에서 훈련 중인 여오현은 “사실 코트 위에 있으면 아픈 걸 잘 모른다. 차라리 경기를 뛰는 게 낫지 언제 어떻게 된다는 기약이 없으니까 정신적으로 힘들다”면서 “이제 허리 통증 자체는 많이 사라졌다. 다만 오른쪽 다리에 힘이 완전히 들어가지 않아 그게 아직도 불편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 “어느덧 우리 팀 주전 선수 대부분이 30대 중반이 됐다. 다들 체력을 걱정할 나이가 됐으니 휴식이 우리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휴식기가 현대캐피탈에 유리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럴 때 분위기가 흐트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선수단 모두가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원래부터 여오현은 나이가 많거나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허투루 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성적도 이를 증명한다. 리그 중단 전까지 여오현은 서브 리시브 성공률(48.1%)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기록 자체는 지난 시즌(49.8%)보다 떨어졌지만 순위는 오히려 4위에서 1위로 올랐다. ‘회춘했다’고 하자 여오현은 “에이, 저는 서브 리시브밖에 안 하잖아요”라며 웃었다.

현대캐피탈은 자기 팀 서브 차례 때는 여오현 대신 신인 구자혁(22)에게 리베로 자리를 맡긴다. 여오현은 “구자혁이 아주 잘 버텨줬다. 순발력이나 기술적인 면에서는 저보다 낫다고 할 정도다. 덕분에 편하게 경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3일이 되면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프로배구 일정이 멈춘 지 3주가 지나게 된다. 한국배구연맹(KOOV)은 이날 단장 모임인 이사회를 열고 향후 리그 운영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는 남은 일정을 어떻게 마감하기를 바라냐’는 질문에 여오현은 “정규리그는 몰라도 포스트시즌은 경기 수를 줄이거나 무관중 상태로라도 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게 지금까지 기다려주신 배구 팬들께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