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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코로나 대응 자화자찬의 허실과 위험

입력 | 2020-03-20 03:00:00

외신이 韓 신속진단과 투명성 평가하자 與 “세계가 우리 방역 평가” 과장 홍보
유럽 미국도 감염자 폭증세 보이자 “역시 중국 막을 필요 없었다” 궤변



이기홍 논설실장


문재인 정권이 코로나19 대응을 잘했다는 자기 홍보가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문세력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돌던 자화자찬은 이제 문 대통령이 직접 입에 올리고, 친여 좌파매체들이 확성기처럼 떠들어대는 수준이 됐다.

집권세력이 “잘했다”의 근거로 드는 주요 논리는 이렇다. ①전 세계가 한국을 칭찬하고 있다. ②선진국도 환자가 쏟아진다. 우리가 확진자가 많이 나온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③마스크 정책 실패라고 비난하지만 선진국보다는 낫다….

그럴듯하지만 팩트나 논리를 따져보면 허점투성이 주장들이다.

우선 ①번. 일부 외신과 몇몇 정치인이 칭찬한 것은 한국의 방역 정책 전반이 아니다. 방역이라는 넓은 개념을 ‘바이러스 유입 차단’과 ‘진단-정보 공개 등 관리’로 나눠보면 해외의 평가는 100% 후자에 국한된다. 그런 글들의 핵심은 감염병 사태를 과소평가한 도널드 트럼프와 중국 시진핑 정권의 불투명성에 대한 비판이다.

②번, 즉 이탈리아 등을 보니 환자 폭증은 불가항력이었고 그나마 우리가 훨씬 낫다는 논리도 허점이 많다.

이탈리아는 유로존 채무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중국 자본이 대거 진출해 중국인 근로자를 고용한 의류 섬유 업체가 부지기수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도 가장 적극적이며 한해 300만 명의 중국인이 찾는다. 사태 초기 중국발 직항편 착륙을 차단했지만 유럽의 특성상 경유항공편, 육로 해상 등 온갖 경로를 통해 인적 왕래가 이뤄진다.

친문세력이 이탈리아를 보라며 큰소리치는 것은 폭우에 창문 닫기를 거부해 피해를 본 1층 집 가장이 침수된 반지하층 옆집과 비교하며 “내 덕분에 피해가 적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탈리아는 방역·의료 시스템에서 우리와 비교가 안 된다. 유럽에서 가장 강경한 ‘의료사회주의’로 인해 의사는 빠져나가고 병원이 줄어들어 1000명당 병상수는 3.18개(한국은 12.27개)에 불과하다.

친여 인사들은 서유럽과 미국에서 환자가 속출하자 그 나라들이 중국을 차단했다는 점을 들어 “역시 입국 차단은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주장한다. 교묘한 팩트 장난이다.

중국발 코로나의 해외 확산을 두 단계로 구분해보면 1단계는 중국 내에서 감염된 사람이 해외에서 일으킨 감염이다. ‘중국 전역 창궐 시기+2주’ 정도다. 그 1단계 때 중국 제외 세계 1위 감염국은 단연 한국이었다. 반면 인구 2600만 명의 대만 등 중국을 차단한 대부분 나라는 이 시기를 조용히 보냈다.

지금 진행되는 2단계는 중국에서 온 감염자에 의해 감염된 사람에 의한 확산이다. 주로 이탈리아를 발원지로 해서 서유럽→미국 등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 차단 여부와 인과관계가 적은 2단계 감염 양상을 갖고 1단계 시기의 중국 차단 실효성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서유럽 국가들에서 최근 뒤늦게 감염이 확산되는 것은 생겐조약에 의해 인적 왕래가 열려 있는 이탈리아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초기에 중국인 입국을 차단했지만 중국 방문 미국인은 무대책으로 방치했고. 최근 유럽발 유입 차단도 한발 늦었다.

만약 우리가 1단계 시기, 즉 중국 내에서 감염병이 창궐하던 몇 주간이라도 중국발 입국을 전면 차단했다면 우리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수월하게 위기를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교육수준에 바탕한 시민의식, 전국민이 순식간에 결집하고 모빌라이즈될 수 있는 역동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인터넷 인프라, 최고의 의료진, 전국 구석구석까지 순식간에 도달되는 행정네트워크,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구축해놓은 방역 시스템 등등 우리에겐 어느 사회보다 감염병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③번, 즉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마스크 구하기가 더 힘들다는걸 보니 우리의 마스크 대란도 정부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주장은 마스크 대부분을 수입하는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는 지난해 기준 하루 300만 장을 만들어낸 마스크 생산대국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국내 확진자가 나오고 37일이 지나서야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한 정책미스가 아니었다면 2월 한달간 겪었던 것과 같은 혼란상은 없었을 것이다. 엘리트 경제관료들이 무더기로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마스크를 보면서 국내용 물량 부족을 예상하지 못했을리 없지만, 당시 중국을 향한 청와대 기류를 아는 관가에서 중국행 마스크를 막자는 건의를 할 엄두를 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칭찬을 들어 마땅한 것은 신속하고 광범위한 진단과 격리·치료, 앱을 통한 동선관리 등 정보화 시스템이다. 이런 성과는 민주화 이후 자율과 경쟁을 통해 쌓아온 민간 역량의 산물이다. 만약 다른 정권이었다 해서 다르게 했을까.

우리의 민도와 의료 역량으로 보아 만약 초기에 청와대가 전문가의 조언과 표준운영절차(SOP)를 따라 선제적 방어조치를 취했다면 우리도 대만처럼 세이프 모드로 이 위기를 넘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경제적 비용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코로나 감염은 12월초 발생해 1월에 이미 세계가 주목하는 사태가 됐다. 우리 정부가 초기에 모든 촉각을 기울여 역량을 투입했는지 의문이다.

과거 선생님들은 빵점의 0 아래에 작대기 2개를 긋곤 했다. 종이를 돌려놓으면 110점이 된다. 중국 정부가 지금 하고 있는 시진핑 찬양이 그런 식이다. 친문들도 “잘 대응했다” 프레임 만들기에 나섰고 일정 부분 먹혀드는 분위기다.

자화자찬은 자유지만 문제는 앞으로다. 중국에서 2차 확산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등 불길은 꺼지지 않고 있다.

만약 정부가 패착과 실기를 거듭한 초기 대응을 자화자찬하며 “전면적 입국 금지를 않고도 바이러스를 막아냈다. 세계가 평가하고 있다”(문 대통령)는 식의 안이한 생각을 한다면 만약 앞으로 만약 중국발 2차 확산이나 또 다른 전염병 사태가 터질 경우 똑같은 악수(惡手)를 둘 위험이 걱정된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