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 앞세우고 전략 없는 文정권… 정책목표 못 맞추고 헛다리 연발 美 멀어지고 中 들이대는 외교 실패…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사태로 번져 ‘善意의 시민 연대’가 우리의 희망
박제균 논설주간
그 옆 세탁소 사장의 비명.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굶어 죽겠다.” 사람들이 외출을 안 하니 세탁물이 확 준 탓이다. 코로나 태풍은 영세 자영업자, 일용직, 방문판매직, 아르바이트생 등 서민의 삶을 가장 먼저 직격(直擊)했다.
을씨년스러웠던 지난 주말, 거리는 한산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줄 서 있어 웬일인가 하면 마스크 판매처였다. 황량한 거리와 마스크 줄이 오버랩되면서 무슨 세기말적 풍경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구소련 말 빵 배급을 기다리는 긴 줄이 떠오르기도 했다. 정말이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이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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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초기 중국에 문을 걸어 잠그지 않은 패착은 전 세계 절반 이상의 국가, 100개국이 넘는 나라가 세계 10위 경제대국인 한국에 문을 걸어 잠그는 참혹한 대가로 돌아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란 말이 돌았는데, 지금처럼 맞아떨어지는 때가 없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다”고 했을 때, 지금 같은 나라를 상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류 세력을 교체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 남북이 화해해 평화가 정착되고 한반도 경제공동체가 구현되는 나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그런 나라가 되었나. 말하자면 입만 아프다. 오만해서 무능하고, 무능해서 오만한 집권세력이 멋대로 밀어붙인 결과가 지금의 참담함이다. 그만큼 어려운 게 국정(國政)이요, 통치다. 그런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정신 승리’나 부르짖고 있으니,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가령 A라는 정책 목표가 있다고 치자. 이를 달성하려면 정교하고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데 운동권 집권세력은 의욕만 앞서고 전략이 없다. 직업 관료라도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코드를 맞추는 무능한 예스맨만 중용한다. 정책을 아는 유능한 각료를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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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對中) 정책이 단적인 예다. 중국이 전 세계에서 의식하고 두려워하는 나라는 미국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면 미국을 통해 중국을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미국과는 멀어지고 ‘한중(韓中) 운명공동체’ 운운하며 들이댄다고 중국이 알아주겠나. 사랑도 외교도 들이댄다고 능사가 아니다.
중국이 느끼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미국과 가까울수록 올라간다. 미국이 버린 한국은 중국에 주변 소국(小國)의 하나일 뿐이다. 실제로 중국에 그런 실리 외교를 펼치는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다. 미일 동맹을 굳건히 하면서도 중국과 전에 없이 가까워지고 있다. 일본의 중국인 입국 제한 조치에 대해 중국이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진전된 일중(日中) 관계의 반영이다.
결국 대중국 정책의 실패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나라가 셧다운되는 듯한 미증유(未曾有)의 위기. 이제 믿고 의지할 데라곤 현명한 국민뿐이다. ‘대구 봉쇄’라는 말이 무안하게 자발적 봉쇄에 나선 대구 시민들, 그런 대구로 달려가는 의료진과 봉사자들, 그들에게 도시락을 보내는 상인과 시민들, 그리고 암울한 시기 국민의 삶에 실핏줄 역할을 해주는 택배기사들…. 이런 ‘선의(善意)의 연대’가 우리의 희망이다. 그리고 언젠가 마음 편히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게 되는 날. 반드시 백서(白書)를 남겨 이 정부의 기막힌 무능을 기록하고 징비(懲毖·앞의 잘못을 징계해 뒤의 환란을 조심)해야 한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