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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의 ‘슈퍼 화요일’ 전략 들여다보니

입력 | 2020-02-27 03:00:00

[글로벌 현장을 가다]세뇌 수준의 블룸버그 광고 세례
美 역사상 최대 규모 돈 선거… “트럼프 꺾을 자금 ‘실탄’ 필요”
‘슈퍼 화요일’ 2위 경쟁 치열, 치솟는 지지율에 거세지는 검증




미국 야당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13일(현지 시간) 집권 공화당의 텃밭인 남부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 박물관에서 선거 유세를 벌이고 있다. 휴스턴=AP 뉴시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1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옥턴 도서관. 아담하고 조용한 도서관 잔디밭에 ‘마이크(Mike) 2020’이라는 팻말이 등장했다. 야당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마이크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의 지지자와 자원봉사자들이 이 동네에서 조직한 첫 모임을 가졌다.

회의실에는 20대 젊은이부터 70대 어르신까지 10여 명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20대 후반의 레이나 라인하트 씨는 “4년 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승리를 장담하며 잠들었다가 다음 날 아침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 소식에 경악했던 순간이 아직 생생하다. 그 악몽을 또 겪을 수 없어 뭐든 도우려고 나왔다”고 했다. 한때 뉴욕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는 엘리자베스 피버스 씨는 “민주당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꺾을 후보는 블룸버그뿐”이라고 거들었다.

1시간 반의 열띤 토론이 오간 후 설문지가 등장했다. ‘집집마다 전화 돌리기’ ‘가가호호 방문’이란 두 가지 지원 활동을 언제 할지 묻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일일이 자신이 가능한 시간대를 표시해 제출했다.

블룸버그 후보는 포브스 추정 640억 달러(약 76조 원)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지닌 세계 8위 부호다. 지난해 11월 출마선언을 한 뒤 후원금 없이 모든 비용을 사비로 충당하고 있다. 이런 억만장자를 돕기 위한 자발적 풀뿌리 후원 조직이 활발히 가동되고 있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 1분당 3만 개씩 쏟아지는 광고

블룸버그의 주무기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쏟아붓는 광고다. 요즘 미국의 주요 TV채널에서는 ‘마이크가 해 낸다(Mike will get it done)’는 광고가 쏟아진다. 블룸버그 캠프는 1분당 무려 3만 개의 광고를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 내보내고 있다. 지난달 1일부터 이달 14일까지 약 한 달 반 동안 구글과 페이스북에서만 무려 20억 개의 광고가 게재됐다.

진보 성향 온라인매체 슬레이트는 아예 그의 185개 광고 전체를 모아 놨다. 이를 보고 나니 기자 역시 ‘나도 투표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뇌당한 기분이었다. 메릴랜드의 한 유권자는 “아무도 TV를 안 보는 새벽 4시에도 광고가 나온다”며 혀를 내둘렀다. 야후뉴스·유고브가 12, 13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전체 등록 유권자의 68%가 “TV에서 블룸버그의 광고를 접했다”고 밝혔다.

연방선거위원회(FEC) 등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 말까지 석 달간 4억6380만 달러(약 5650억 원)를 썼다. 역대 미 대선에서 어떤 후보가 쓴 돈보다 많다. 그의 캠프에는 실리콘밸리를 좌지우지하는 정보기술(IT) 거물, 광고 전문가 등이 포진했다.

특히 정치 캠페인 전략을 담당하는 신생 기업 호크피시는 광고 제작 및 집행, 각종 데이터에 기반한 목표 유권자층 분석, 광고 효과 검증 등을 책임지고 있다. 게리 브리그스 전 페이스북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제프 글루크 전 포스퀘어 최고경영자(CEO) 등을 포함해 약 270명이 관여한다. ‘블룸버그 찾기’란 퀴즈 형식으로 그의 얼굴을 미트볼 위에 합성한 사진 등 최근 소셜미디어를 달군 밈(meme·재미있는 사진, 영상 등이 빠르게 퍼져 유행이 되는 현상)이 모두 이들의 작품이다.

그는 캠프 운영에도 막대한 돈을 뿌리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캠프의 초급 현장 직원 연봉은 약 7만2000달러(약 8784만 원). 주(州) 담당자와 전국 담당자는 각각 14만4000달러, 36만 달러의 억대 연봉을 받는다. 다른 후보들은 엄두도 못 낼 수준이다.

또 그는 뉴욕을 포함해 미 18개주 선거사무소에 2100명의 인력을 투입했다. 판세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버진아일랜드에도 사무소를 열었다. 지난해 11월 출마선언 후 10주간 30개주에서 진행한 각종 행사가 1200개가 넘는다.

○ 자금 폭탄과 ‘슈퍼 화요일’ 성적의 상관관계

민주당의 대선후보 선출은 본선인 대선과 마찬가지로 간접선거이며 인구 밀집지역에 많은 대의원을 배분한다. 선언 대의원(일반 대의원) 3979명의 과반을 차지하는 사람이 후보로 뽑힌다. 3일 아이오와, 11일 뉴햄프셔, 22일 네바다 등 총 3개주 경선을 치른 현재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45명,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25명,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15명의 대의원을 확보했다.

블룸버그 후보는 대의원이 적은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등을 건너뛰고 대의원 수 1, 2위 주인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를 포함해 총 14개주에서 동시에 경선이 치러지는 다음 달 3일 ‘슈퍼 화요일’부터 대의원 확보에 나서겠다는 전략을 진행했다.

압도적인 ‘쩐(錢)의 위력’이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까. 지지율 면에서는 가시적 성과가 있다. 출마선언 당시 그의 전국 지지율은 0%였지만 최근 15%로 상승했다. 정치전문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가 25일 기준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한 결과, 블룸버그 후보는 415명의 대의원이 있는 캘리포니아에서 14.5%의 지지를 얻었다. 1위 샌더스 후보(26.3%)보다는 낮지만 2위 바이든 후보(14.8%)와는 박빙이다.

대의원 228명의 텍사스에서는 샌더스(22.3%), 바이든(20.7%)에 이어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공동 3위(15.3%)다. 후보들의 노선, 현 지지율 등을 감안할 때 그가 바이든 후보와 중도층 유권자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아직 그가 독보적 1위 샌더스 후보를 넘어설 만한 인상적인 면모를 보여주진 못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19일 TV 토론회에 처음 등장한 그는 다른 후보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지만 제대로 만회하지 못해 토론회 패자로 꼽혔다. 반면 샌더스 후보는 ‘아이돌 팬덤’에 가까운 열광적 지지층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강력한 경쟁자로 꼽혔던 바이든 후보의 부진으로 연일 대세론을 설파하고 있다.

샌더스 후보가 ‘슈퍼 화요일’ 경선 후에도 1위를 질주하면 강경 진보인 그의 본선 경쟁력을 우려해 당내에서 나머지 후보의 단일화를 종용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도 성향인 블룸버그, 바이든, 부티지지 3인 중 한 사람에게 표를 몰아줘 샌더스를 잠재우고 본선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맞서야 한다는 논리다.

7월 13∼16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 전까지 아무도 과반 대의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2차 전당대회가 열린다. 이때 당 수뇌부, 전직 대통령과 부통령 등 소위 비(非)선언 대의원(슈퍼 대의원) 771명이 추가로 투표권을 행사한다. 이 중 상당수는 과거 블룸버그로부터 거액을 후원받았거나 향후 자신의 선거 때 블룸버그의 지원이 절실하다. 이에 블룸버그 후보가 샌더스 후보를 꺾진 못해도 최소한 전당대회 전까지 샌더스의 과반 확보만 막아도 그에게 승산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 돈으로도 해결 안 되는 자질 검증

그의 지지율이 오를수록 자질 검증도 본격화하고 있다. 금권정치 논란, 성·인종 차별 발언은 물론이고 유대계인 그가 반(反)유대주의 세력의 보이지 않는 견제도 뚫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그가 경쟁자보다 훨씬 늦은 지난해 11월에 출마를 선언한 이유도 스스로 “나처럼 키가 작고 유대인이며 이혼한 억만장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느냐”며 부담감에 시달려 왔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의 잦은 당적 바꾸기에 따른 ‘철새’ 논란도 상당하다. 민주당 상황에 정통한 넬슨 커닝햄 ‘맥라티어소시에이츠’ 대표는 기자에게 “공화당원으로 뉴욕시장에 당선되고 거액의 정치자금까지 후원한 그를 민주당 소속으로 보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원래 민주당원이었지만 2001년 뉴욕시장 선거에 처음 도전할 때 후발주자인 자신이 불리할 것으로 보고 공화당으로 갔다. 이후 2009년 3선에 도전할 때는 무소속으로 나섰다.

한국에서 가장 관심을 가질 만한 대북정책 등 그의 외교안보 노선은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의 선거 캠페인이 아직 의료보험, 총기 규제, 세금 등 국내 현안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캠프는 한반도, 북한 비핵화를 비롯한 외교정책을 묻는 동아일보의 질의에 답을 하지 않았다. 유세 일정 등을 즉각 알려주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