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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善意의 逆說’, 임대료 통제[오늘과 내일/김광현]

입력 | 2020-02-27 03:00:00

정부여당 임대계약기간 연장·전월세 상한제 추진
“도시 파괴하는 확실한 방법” 경제학자 의견 일치




김광현 논설위원

강남 집값 상승은 다소간 배 아픈 문제이지만 전월세 가격 즉 임대료 상승은 민생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리고 상대적 약자이고 다수인 서민들에게 큰 부담이 되는 사안이다. 그래서 주택 임대료 문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 이슈로 부각되곤 한다.

지난달 30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 시의회는 향후 5년간 주택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게 하는 ‘임대료 동결법’을 통과시켰다. 이미 올리기로 합의했더라도 2014년 이후 지어진 집이라면 작년 6월 정해진 임대료를 5년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베를린시는 사회민주당, 좌파당, 녹색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해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과거 동독 공산당 후신인 좌파당이 법안을 주도했다.

이에 앞서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앞으로 10년간 임대료 인상률을 연 5% 이내로 제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주거비용 급등으로 노숙인이 늘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처다.

문재인 정부가 이에 뒤질 리가 없다. 법무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작년 9월 당정협의를 통해 현재 2년인 전월세 계약 기간을 2배인 4년으로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상가에만 적용되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주택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이기도 하다. 한꺼번에 왕창 전월세를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전월세 상한제는 한 묶음이다.

주택시장에 몰고 올 파장을 감안하면 이 정도 큰 정책을 발표하기 전에는 최소한 주택정책 주무부서인 국토교통부와 사전 실무협의가 있어야 한다. 발표장에 김현미 국토부 장관도 배석하는 것이 당연하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 직후 한창 도덕성 논란을 빚을 무렵이라 그런지 부처 간 협의도 없었고 관련 부처 장관도 배석하지 않았다. 발표 후 국토부는 “사전 협의는 없었지만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힌 게 고작이었다.

부동산 정책에 관련한 실질적 수단 즉 세제 예산 금융을 주무르고 있는 기획재정부도 꿀 먹은 벙어리이긴 마찬가지다. 다른 모든 정책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코로나19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지만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은 조만간 터져 나올 사안이다. 법무부가 지난해 해외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유일하게 보낸 곳이 베를린이고 최근 강남 전셋값이 급등하고 있어 속도를 내는 형국이다.

임대료 상한제나 계약갱신기간 확대는 다른 가격 통제 정책과 마찬가지로 당장 혜택을 보는 유권자가 많고, 약자들 편에 선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선호하는 이른바 ‘착한 정책’이다.

그렇다고 결과까지 착하지는 않다는 ‘선의의 역설’은 이미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입증됐고 근래에는 최저임금 인상 후유증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특히 임대료 통제는 의견 충돌이 잦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 일치를 보는 몇 안 되는 정책이다. 주택의 공급과 질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결국에는 세입자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경제학 교과서 ‘맨큐 경제학’은 스웨덴 경제학자 아사르 린드베크의 “폭격 이외 수단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주택 임대료 통제”라는 말을 인용해 가격 통제 폐해의 대표적 사례로 임대료 통제를 들고 있다.

대체로 정치인들이 앞장선 경제 정책은 끝이 좋지 않다. ‘장기적’으로 도시가 파괴되고 ‘결국’ 세입자가 피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당장’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양잿물도 마실 수 있다는 게 정치인의 속성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정신 차린 유권자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