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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잔치와 졸업식[이재국의 우당탕탕]〈33〉

입력 | 2020-02-18 03:00:00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졸업식 시즌이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졸업식 사진이 별로 안 올라오고 있다. 올라와도 단출한 가족사진이 전부다. 며칠 전, 친구 녀석이 아들 중학교 졸업식 사진을 한 장 올렸는데 옛날 생각이 났다. 난 그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봤고 아이 돌잔치에도 참석했다. 돌잔치에서 이벤트를 했는데, 가장 멀리서 온 사람, 아이에 관련된 퀴즈를 맞힌 사람 등 하객에게 부모가 준비한 선물을 줬다. 나도 운 좋게 당첨돼 선물을 받았는데, 집에 와 풀어보니 도자기로 된 밥그릇과 국그릇 두 세트였다. 그날 저녁 친구에게 전화가 왔고 “오늘 와줘서 고마워. 내가 신중하게 고른 선물인데 네가 받아서 다행이다. 도자기 명인이 만드신 그릇이거든. 귀한 선물이니까 잘 써!” 친구의 귀한 선물이라는 말을 듣고 도자기를 자세히 보니 밑바닥에 명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날 이후, 설거지를 할 때마다 그 그릇을 보면 친구가 생각났고, 친구 아들 녀석이 잘 자라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아이가 세 살 정도 됐을 무렵, 몸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듣고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아이가 발육이 좀 늦는 건 줄 알았는데, 병원에서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같이 술잔을 부딪치고 헤어질 때 두 손을 꼭 잡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일 있으면 꼭 연락 줘”라고 말한 게 전부였다. 그날 이후에도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지 궁금했지만 친구가 SNS에 올리는 사진을 보며 댓글로 안부를 전할 뿐, 구체적으로 물어보기 힘들었다. 그 대신 집에서 설거지를 할 때마다 친구가 선물해 준 그 밥그릇 국그릇을 더 애지중지 다루게 됐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건강이 좋아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글을 보며 안심이 됐다. 이후 중학교에 입학한 사진까지 봤는데 어느새 졸업이라니! 안부도 전할 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 약속을 정하고, 졸업선물을 들고 친구 회사 앞으로 찾아갔다. 아이들이 크는 만큼 부모는 작아지는 건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더 작아보였다.

“고등학생 아들은 뭐 좋아하는지 몰라서 그냥 운동화 샀다. 사이즈 안 맞으면 교환 될 거야.” “고맙다. 연우는 중학생인가?” “이번에 6학년 돼. 사춘기라 예민해!” “그래도 그때가 좋은 거야. 그때 시간 많이 보내.” “돌잔치 한 게 엊그제 같은데 고등학교 입학이라니, 세월 빠르다. 네가 올린 중학교 졸업사진 보다가 그 녀석 돌잔치에서 받은 도자기 그릇 생각이 났어. 올해 17세이니까 도자기는 16년 됐겠네. 지금도 잘 쓰고 있다. 명인이 만드신 거라 그런지, 금 간 곳도 없고 멀쩡해. 내가 그 녀석 스무 살 될 때까지 이 그릇 잘 사용하고, 그 녀석 스무 살 생일에 새로운 밥그릇과 국그릇을 선물할게. 귀한 걸로. 지금까지 잘 컸으니까, 앞으로도 잘 클 거야.” 같이 점심 먹고, 커피도 한잔 마시고 사무실로 들어가는데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고맙다. 잘 사용해줘서. 지금 같은 마음으로 잘 사용해줘. 나도 이 녀석 건강하게 잘 키울게. 너 보내고 나 화장실에 가서 울었다. 고마워서. 정말 고마워.’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