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1
광고 로드중
15일 오전 춘천지법 312호 법정. 귀가 어두운 98세 노인 A 씨는 재판부가 자신에게 내린 패소 판결도 알아듣지 못했다. 법정을 나와 주위에서 큰 소리로 알려준 뒤에야 2심에서도 자신이 패소했음을 알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춘천지법 제1민사부(부장판사 신흥호)는 이날 A 씨가 셋째 아들 B 씨(56)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 소송을 기각했다. A 씨는 “22년 전 땅을 증여받은 아들이 나를 부양하고 땅을 팔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땅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을 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며 “상고하겠다”고 말했다.
A 씨 부자의 사연은 22년 전 시작됐다. 1998년 1월 A 씨는 아들에게 강원 평창군 용평면의 임야 1만6264㎡를 증여했다. 이 땅은 A 씨의 아내와 조상들의 묘가 있는 선산이다. A 씨는 당시 B 씨에게 증여하는 조건으로 ‘이 땅이 선산인 만큼 절대 팔지 않고 자신을 잘 부양한다’는 약속을 했다고 주장했다.
광고 로드중
당시 재판부는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증여 당시 피고가 원고에게 이 사건 토지를 타인에게 매매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는 등의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B 씨의 손을 들어줬다. 증여 당시 약속을 입증할 만한 각서나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또 A 씨는 B 씨가 자신에게 땅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위장매매한 의혹도 있다고 주장했다. 2014년 6월 B 씨가 사업 동반자인 C 씨(47·여)에게 이 땅을 실 거래가보다 턱없이 낮은 가격인 1300만 원에 매매한 것이 의문이라는 주장이다. B 씨와 C 씨는 이 땅에서 함께 버섯을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열린 재판에서 판사가 조정 차원에서 C 씨에게 산 가격의 두 배에 땅을 팔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 가격에는 안 된다. 10억 원이면 팔 수 있다”고 답했다. C 씨는 그동안 산을 깎고 하우스 시설을 설치하는 등 투자를 많이 해 땅의 가치가 올라갔다고 해명했다.
B 씨는 “아버지가 증여 당시 했다는 약속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동안 조상들 묘를 공들여 관리해 왔다. 돌아가시면 그 땅에 아버지를 모실 생각이다. 그리고 나 역시 어려운 형편”이라고 밝혔다.
광고 로드중
법정 안에서 약 2m 거리를 두고 앉아있던 부자는 눈길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재판이 끝나자마자 각자의 길로 사라졌다.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