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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발(發) ‘리시브 시프트’ 대세 될까? [발리볼 비키니]

입력 | 2020-01-14 14:00:00


연습 경기 도중 상대 서브를 받고 있는 여오현 플레잉 코치(5번). 현대캐피탈 제공


“지난번에는 살짝 시프트를 걸어서 통했는데 오늘은 저쪽에서 다 파악해서 안 될 거예요.”

최태웅 프로배구 남자부 현대캐피탈 감독은 2019~2020 도드람 V리그 3일 안방 경기를 앞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 감독이 말한 ‘지난번’은 현대캐피탈이 OK저축은행에 3-0 완승을 기록한 지난해 12월 24일 맞대결.

두 팀은 이날 10일 만에 리턴매치를 벌였습니다. 이날은 최 감독 예상(?)대로 OK저축은행이 3-1로 이겼습니다.

최 감독이 말한 ‘시프트’는 서브 리시브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배구 자리 번호.


배구 경기에서 각 선수는 이 그림 순서로 서브를 넣는 것뿐 아니라 상대 서브 때도 이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자리를 지킨다는 게 꼭 각자 번호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앞 줄 선수가 뒷줄 선수보다 앞에, 왼쪽 선수보다 오른쪽 선수가 오른쪽에 있으면 됩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경기 때 현대캐피탈 선수들도 OK저축은행 서버가 공을 띄울 때까지는 이 자리를 지켰지만 이후에는 슬쩍 자리를 바꿨습니다.

리시브 능력이 부족한 문성민(34)을 보호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문성민은 서브 리시브 의무가 없는 라이트에서 오래 뛰었기 때문에 리시브에서는 ‘구멍’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이날 경기까지 서브 리시브 성공률이 2.6%밖에 되지 않습니다.

경기 도중 서브 리시브에 참가하고 있는 문성민. 현대캐피탈 제공


그래서 문성민을 대신해 ‘리베로’ 여오현(42)이나 ‘수비형 레프트’ 박주형(33)이 이 서브를 받도록 시프트를 건 겁니다. 여오현은 이날까지 49.5%로 리시브 성공률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박주형은 48.9%로 2위입니다.

규칙도 규칙이지만 이렇게 나머지 선수들 능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이 작전을 걸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프트는 통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때 문성민은 상대 서브를 다섯 번(8.8%)밖에 받지 않았고 문성민이 리시브에 실패한 것도 한 번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최 감독은 OK저축은행 석진욱 감독이 경기 후 비디오 분석을 통해 파훼법을 마련했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이날은 이 시프트가 통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던 겁니다.

이날도 문성민은 3세트 1-1 상황에서 상대 서브를 받지 못했습니다.

SBS스포츠 중계화면 캡처


상대팀이 연속해 서브를 넣을 때 우리 팀 선수는 계속 같은 로테이션 순번을 지켜야 합니다. 약점이 있는 로테이션이라면 빨리 벗어나는 게 좋겠죠?

현대캐피탈은 이 상황에서 시프트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OK저축은행 전진선(24)이 때린 서브는 6번 자리에 있는 문성민을 향해 날아왔습니다. 서브를 받은 건 5번 자리(로테이션 순서는 2번)에서 살짝 옮긴 박주형이었습니다.

SBS스포츠 중계화면 캡처


이 랠리 때는 다우디(25)가 공격에 성공했기 때문에 현대캐피탈은 이 로테이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습니다.

잘 모르시겠다고요? 느린 화면으로 보시면 각 선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조금 더 자세히 보입니다.

SBS스포츠 중계화면 캡처


바로 이 다음에 재미있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OK저축은행에서도 이 시프트를 쓴 겁니다.

박주형도 서브 리시브 성공률 21.4%에 그치고 있는 송명근(27)을 타깃으로 삼았는데 리베로 정성현(29)이 나타나 이 서브를 받았습니다. 정성현은 리시브 성공률 43.8%를 기록 중인 선수입니다.

SBS스포츠 중계화면 캡처


물론 이 장면에서만 그런 건 아니고 경기 후반에는 이 시프트를 많이 활용했습니다.

최 감독은 경기 후 “역시 진욱이가 따라할 줄 알았다”며 웃었습니다. 최 감독과 석 감독은 인천 주안초 시절부터 함께 배구를 했던 사이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크리스마스 이브 때는 사실 현대캐피탈이 조금 더 적극적이었습니다. 아래 GIF처럼 아예 자리를 맞바꾸기도 했습니다.

현대캐피탈 제공


이 리시브 시프트에 저작권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도쿄 올림픽 예선 휴식기를 보낸 각 팀에서 앞다퉈 이를 활용한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서브 때는 서버에게 눈길이 가는 게 당연한 일. 그래도 앞으로는 받는 쪽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한 번 살펴 보시면 프로배구를 더욱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