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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닉슨, 워터게이트 특검 잘라 탄핵몰렸다

입력 | 2020-01-09 03:00:00

美 닉슨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특검을 해임한 ‘사법방해’였다
선거개입 수사하는 ‘윤석열 검찰’ 기어코 찍어낸 청와대 섬뜩하다
살아있는 국민이 두렵지 않은가




김순덕 대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인상이 달라졌다. 7일 신년사 영상과 1년 전 영상을 비교해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얼굴 아랫부분에 살집이 조금 생겼는데 너그러워 보이는 게 아니라 그 반대다. 강퍅하면서 권위적으로 변한 느낌이다.

탁월한 연출자 탁현민이 없어서인가 싶었다. ‘1·8 대학살’ 같은 검찰 인사를 보니 알겠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을 놓고 대통령 턱밑까지 파고든 ‘윤석열 검찰’의 수족을 찍어내지 않고는 편할 수가 없던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사건을 넘겨받아 암장하려면 7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대통령의 30년 절친을 당선시키려 청와대부터 집권당까지 동원됐다는 정황이 계속 나오는데 대권 꿈을 꾼다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자기 정치나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불안하면서도 노기(怒氣)가 뻗치는 듯했다.

1974년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린 건 도청 때문이 아니라 수사담당 특별검사를 해임한 사법방해 때문이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문 대통령이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 중인 윤석열 사단을 모조리 좌천시킨 것은 ‘민주적 통제’가 아니라 명백한 사법방해다. 더구나 총선을 앞두고 국민이 시퍼렇게 보는 상황에, ‘윤석열 패싱’이 가능한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통령의 대학 후배를 꽂아 넣은 건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것과 다름없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싶었던 조치들이 각본을 따르듯 착착 진행되는 현실은 섬뜩하다. 돌연 연기됐던 대선 댓글 조작 사건 김경수 경남지사의 2심 선고도 1심 유죄 판결이 뒤집힐지 모른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 못 하고, 사법부마저 독립성을 잃으면서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소리가 나온다. 남산에 끌려가 물고문당하지도 않으면서 무슨 전체주의 타령이냐는 문파에게 최근 포린어페어스지가 소개한 독재의 정의를 알려주고 싶다.

280개 독재정권을 분석한 ‘독재는 어떻게 작동되는가’ 연구에 따르면 승자를 결정하기 힘든 선거를 하거나, 선출된 지도자가 경쟁의 룰을 바꾸는 것이 독재정권이다. 문재인 정부는 현직 의원도 산식(算式)을 알 수 없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제1야당과 합의 없이 바꿔버렸으니 당당히 속할 만하다.

독재정권은 측근에게 공직이나 이권을 나눠 주고 반대자를 냉혹하게 처벌함으로써 장기집권을 유지한다. 이란 국민은 2019년 성장률 ―9%로 고꾸라진 ‘저항 경제’ 속에 고통받는데도 이슬람 정권이 유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혁명수비대가 기업을 운영하며 정부 사업을 도맡아선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어 체제가 수호되는 것이다.

청와대가 측근들을 공기업에 낙하산 투하한 것도 모자라 총선까지 보낸다는 건 국가를 꿀단지로 본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기업 정규직원을 6만 명이나 늘리고 온갖 보조금을 푸는 것도 결국 장기집권을 위한 매표 행위로 봐야 한다.

독재의 기술로는 대법원장 임명 등 최고지도자가 법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장악하는 것이 필수다. 이란에선 대통령도 의원도 최고지도자가 관할하는 헌법수호위원회의 검증을 거쳐야 출마한다. 이념은 세속의 종교다. 문 대통령이 이념에 맞는 인사로 사법부와 검찰을 장악한 데 이어 공수처를 통해 목줄까지 죈다는 건 탁월한 통치술이라 할 수 있다.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절대권력도 영원할 순 없다. ‘독재는…’ 연구에선 3분의 1이 쿠데타로, 4분의 1은 선거에 의해 몰락했다. 하지만 1979년 이란혁명 때처럼 언제 혁명이 일어나 독재정권을 무너뜨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게 아산정책연구원 장지향 중동센터장의 연구 결과다. 언론자유를 없애 독재정권은 국민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고, 정치 엘리트는 거짓 충성경쟁에 골몰하기 때문이다.

어떤 우발적 계기로 독재정권이 국가 장악력과 여론 통제를 놓치는 순간, 혁명은 봇물처럼 터지게 돼 있다. 군과 관료 등 지배 엘리트는 주변의 움직임을 보며 어느 편에 설까 결정하는데, 당황한 독재자가 사과하거나 유화책을 내놓으면 정권은 걷잡을 수 없이 붕괴한다.

우리 대통령의 흔들리지 않는 단호함이 이런 연구 끝에 나온 것이 아니길 바란다. 듣기 좋은 보고만 하는 참모, 마사지 통계나 여론조사에 의지하다간 정말 개혁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혁명 뒤에 등장하는 정권이 이전 정권보다 꼭 나은 건 아니라는 역사의 교훈이 두려워 하는 소리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