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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향우’ 정신… 스마트 용광로… 세계 ‘등대공장’ 우뚝

입력 | 2019-12-30 03:00:00

[한국기업 100년 퀀텀점프의 순간들]
<10> 포스코, 제철보국 이어 ‘기업시민’




그가 1968년 쓴 보고서는 한국을 발칵 뒤집어 놨었다. 요약하자면 ‘한국에서 철을 생산해 봤자 쓰일 곳도 없다. 해외 차관에 의존해 제철소를 지으면 실패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보고서는 우리 정부가 보낸 차관 예비신청서에 대해 미국 측이 보내는 ‘거부’ 의사와 같았다.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상식적이겠지만 박태준 회장은 달랐다. 군인 출신인 그는 포항제철 주식이 한 주도 없었지만,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라는 좌우명을 신앙처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박 회장뿐 아니라 당시 정부 관료들, 포항제철에 모인 신입 직원들은 제철소가 애국의 길이라는, 이상하리만큼 강한 진정성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진정성이 ‘상식을 초월하는 일’을 해내 50여 년 뒤 포스코가 2019년 기준 재계 6위, 자산 78조 원이 넘는 글로벌 그룹으로 성장할 줄 그땐 아무도 몰랐다.

○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

“제철소에 인생을 걸었는데, 돈 1억 달러를 못 구해 이렇게 나자빠져야 하나. 고심 중에 갑자기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온몸에 강한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1969년 초 차관을 거절당한 박 회장은 갑자기 대일청구권자금을 떠올린다. 농림수산 부문에 쓰기로 협약된 돈이라 그는 곧바로 일본 정계와 철강협회를 설득하러 일본으로 떠났다. 끈질긴 설득으로 지원 약속을 받아냈다.

박 회장은 이때부터 부실공사를 들킨 직원 등에게 ‘민족 반역자’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선조들의 피 값으로 건설하는 만큼 실패하면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니 우향우해 영일만(경북 포항 앞바다)에 빠져 죽어 속죄해야 한다”고 비장한 각오를 내비쳤다. 불굴의 정신을 상징하는 ‘우향우 정신’이 이때부터 포스코 문화의 근간이 됐다. 또 한정된 자원으로 창의력을 발휘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란 박 회장이 내건 슬로건도 여전히 포항제철소 정문에 붙어 있다.

‘우향우’, ‘창의는 무한’ 정신은 첫 쇳물이 나오기까지 여러 번 빛을 발했다. 당시 정치권에서 제철소에 돈이 몰린다는 것을 알고 대놓고 대선 자금을 요구하거나 로비스트와 결탁해 설비 구매에 개입하려 했다. 박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 박 대통령은 소신껏 설비를 구매하라는 취지로 박 회장의 건의사항이 담긴 메모지에 곧바로 서명해 줬다. 이 메모지는 훗날 ‘종이마패’로 불렸다.

박 회장은 또 “대체 제철소가 어디 있냐”는 호주 광산업계의 질문에 모래벌판 위 ‘제선공장’ 입간판 사진을 꺼내들어 집요한 설득에 나섰다. 결국 좋은 조건으로 철광석 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 자동차-조선업 발전 기반된 철

포항에 제철소 건설이 본격화된 1970년은 한국 경제사에 중요한 기점이었다.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1967년 현대자동차, 1969년 삼성전자, 1972년 현대중공업이 생겼다. 1973년 마침내 포항제철소에서 첫 쇳물이 흘러나온 뒤에 자동차, 조선도 생산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철은 산업의 ‘쌀’이었기에 대통령부터 제철소 건설 근로자까지 ‘애국의 길’이라며 매달린 것이다. 포스코의 조강 생산량은 1973년 44만9000t에서 2017년 3720만6000t으로 약 83배로 뛰었다.

포스코는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지만 전문경영인이 다른 기업의 오너 일가 못지않게 장기 투자를 감행해 왔다. 1973년 첫 흑자를 낸 이래 현재까지 개별 기준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포스코는 2000년 민영화 이전에는 정부와 산업은행이 대주주였고, 2019년 9월 기준 국민연금(11.72%)이 대주주다. 한 포스코 관계자는 “정통 ‘포스코맨’ 전문경영인과 임원들은 우향우 정신을 바탕으로 ‘주인의식’이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와 같은 대형 인수합병(M&A), 2007년 세계 최초 파이넥스 공법 상용화를 위해 15년간 연구개발(R&D)비 5000억 원 투자 등의 사례가 대표적인 장기 대형 투자 사례로 꼽힌다. 포스코의 새로운 성장동력인 리튬 2차전지 소재 산업도 정준양 회장 시절부터 권오준 회장을 거쳐 현 최정우 회장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올해 포항제철소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하는 등대공장(세계 제조업의 미래를 이끄는 스마트 공장)에 선정됐는데, 이는 2016년 알파고의 대국 장면을 지켜본 임직원과 연구원들이 힘을 합친 덕이 컸다.

○ 지역 사회 넘어 ‘기업시민’으로 발돋움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올 7월 취임 1년을 맞아 새로운 포스코의 비전으로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강조한 ‘기업시민헌장’을 선포했다. 미래 100년 비전으로 삼겠다는 의지다.

지역과 함께 성장하겠다는 것은 박태준 창업회장 때부터 내려오는 정신이기도 하다. 포항제철은 1968년 서울 명동 유네스코 빌딩에서 창립총회를 한 뒤 YWCA 건물을 사옥으로 삼았지만 1973년 본사를 포항으로 이전해 버렸다.

박 회장은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영기업체 본사를 지방으로 옮기는 것은 인구 분산도 되고, 산업시설을 전국 곳곳에 두어 거기서 창출되는 소득의 균등 분배 효과도 있기 때문”이라고 본사 이전 배경을 밝혔다. 인재가 포항까지 가겠느냐는 우려에 직원들의 주택과 학교를 포항에 지어 지역과 함께 크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포스코는 이제 본사가 위치한 지역을 넘어 사회와의 조화를 꾀한다는 방침이다. 최 회장은 기업시민헌장을 발표하며 “의사 결정과 일하는 방식에서 기업시민헌장을 준거로 공생의 가치를 창출하면서 기업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