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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소설이 흘러내리는 전시… 美 제니 홀저 ‘FOR YOU’전

입력 | 2019-12-26 03:00:00

한강 등 5인 작품 텍스트 차용




제니 홀저의 작품 ‘당신을 위하여’(2019년). 텍스트: 김혜순, 한강, 에밀리 정민 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호진 아지즈의 글 발췌. 국립현대미술관 제공·ⓒ2019 Jenny Holzer, member Artists Rights Society (ARS), NY/ Society of artist copyright of Korea(SACK), Seoul

‘그리하여 숨/그러자 숨/그 다음엔 숨/이어서 숨/그래서 숨…’(‘질식-마흔엿새’, 김혜순)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의 가장 층고 높은 공간 ‘서울 박스’에 김혜순 시인의 시가 흘러내린다. 6.4m 길이에 상하로 오르내리는 로봇 발광다이오드(LED) 기둥은 미국 작가 제니 홀저(69)의 신작 ‘당신을 위하여(FOR YOU)’다. 2017년 MMCA 커미션 프로젝트로 시작된 이 작품은 김혜순, 한강, 에밀리 정민 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호진 아지즈 등 현대 문학가 5명의 작품 텍스트를 그대로 보여준다. 김혜순 시인의 글은 ‘죽음의 자서전’(2016년)에서, 한강 작가는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년)에서 발췌했다. 작가는 역사적 비극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이들의 생각을 추적한다.

홀저는 1970년대 후반부터 역사, 정치, 사회 문제를 주제로 자신이 직접 만든 경구를 뉴욕 거리에 붙이면서 작품을 시작했다. MMCA 서울관 로비 벽면에 붙은 ‘‘경구들’(1977-79)로부터’, ‘‘선동적 에세이’(1977-82)로부터’ 포스터 작품에서 이들 작업을 만나볼 수 있다. ‘당신의 모든 행동이 당신을 결정한다’, ‘자신을 확신하는 자는 바보다’ 등 서로 비슷하거나 모순되는 다양한 경구들이 1000여 장의 포스터에 알파벳순으로 빼곡히 담겨 있다.

MMCA 과천 야외조각공원의 석조 다리 위 난간에도 홀저가 선정한 11개의 글귀가 국문과 영문으로 새겨졌다. ‘지나친 의무감은 당신을 구속한다’, ‘사람은 꿈속에서 솔직하다’, ‘따분함은 미친 짓을 하게 만든다’ 등이다. 간단한 문구를 통해 다양한 해석이 촉발되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는 것이 홀저 작품의 특징이다.

내년 7월 5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와 연계해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과 대화 행사도 열린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