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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3저 호황’에 대형차 그랜저 날개

입력 | 2019-12-24 03:00:00

[한국기업 100년, 퀀텀점프의 순간들]
첫모델 이름공모 ‘아리랑’ 1위… 수출 염두에 둬 ‘포니’로 최종 선택
투싼-팰리세이드 모두 美휴양도시, 자유로운 이미지 SUV 이름으로




1974년 7월. 현대자동차는 최초의 자체 모델인 자동차 이름을 짓기 위해 39일간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었다. 응모자 수는 총 5만8023명. 이 가운데 ‘아리랑’(887표)이 1위를, ‘휘닉스’(211표)가 2위를 차지했다. 3위를 차지한 ‘포니’는 105표를 얻었다. 현대차는 포니를 최종 차 이름으로 정하며 포니를 적었던 충남 논산군의 이대식 씨를 선정해 승용차 1대를 상품으로 증정했다. 현대차가 1위 아리랑이 아닌 3위 포니를 택한 까닭은 수출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인기 자동차 이름에는 당시 시대상과 함께 숨은 전략을 엿볼 수 있다. 현대차의 최장수 브랜드는 역시 ‘쏘나타’다. 1985년 대우자동차 ‘로열프린스’를 겨냥해서 출시됐다. 서서히 등장하는 중상류층을 겨냥해 클래식의 악곡 형식을 뜻하는 소나타에서 따왔다. 원래 출시 당시 이름도 ‘소나타’였다. 그런데 ‘소가 타는 것이냐’는 농담이 나오자 2세대부터 쏘나타로 바꿨다.

1986년에는 현대차의 최고급차 ‘그랜저’가 나온다. 이름도 크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그랜저로 지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 직후인 1980년대 초반 많은 기름을 먹는 대형차는 초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당시 현대차가 팔던 포드의 ‘그라나다’는 웬만한 아파트 한 대 가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시 유가와 달러 가치, 국제금리가 낮아지는 ‘3저 호황’으로 고급 대형차에 대한 욕망이 일기 시작했고, 각진 그랜저는 대성공을 거뒀다.

1990년대에는 오렌지족, X세대처럼 차를 살 수 있는 젊은 세대가 등장한다. 1994년 출시된 ‘엑센트’는 발음하기 쉽고 젊고 신선한 어감을 준다는 이유로 채택됐다. 당시 광고 문구에도 ‘젊은 제작진이 만든 젊은 사람을 위한 차’를 강조하며 ‘신세대 신감각 엑센트’라고 표현했다. 동아일보는 1992년 5월 2일자 ‘차 이름 짓기 아이디어전 치열’이라는 기획기사를 통해 국산 자동차 이름에 얽힌 뒷얘기를 기사화한 적이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프랑스어로 열정을 뜻하는 ‘엘란’과 영어로 수송을 뜻하는 ‘트랜스포트’를 적절히 합쳐 ‘엘란트라’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유럽이나 호주로 수출될 때는 ‘란트라’라는 이름을 달고 나갔다. 이 지역에 이미 엘란트라라는 차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2000년 싼타페를 시작으로 2004년 투싼, 2017년 코나, 2018년 팰리세이드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내놨다. 모두 미국 휴양 도시 이름이다. 자유로운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염희진 salthj@donga.com·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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