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 LG명예회장 별세] 국내 대기업 첫 자발적 승계 결단… 은퇴후 연구소 만들어 버섯 재배
고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70세이던 1995년 2월, 25년간 맡아 온 회장직을 스스로 놓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젊고 도전적인 사람들로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는 국내 최초의 대기업 ‘무고(無故) 승계’로 기록되며 경영계에 귀감이 됐다.
구 명예회장은 당시 이임사에서 “그동안 경영혁신을 추진해 오면서 우리도 얼마든지 세계 수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서 나의 역할을 마치고자 한다”고 밝혔다.
구 명예회장은 당시 장남인 구본무 회장(2018년 작고)에게 회장직을 넘기면서 그룹 발전에 공헌한 창업세대 원로들과 동반 퇴진했다. 고 허준구 LG전선 회장, 고 구평회 LG상사 회장, 고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등이 함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구 명예회장은 이임식 전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 2세 원로들을 모두 모아 놓고 ‘나가자’고 말한 것은 아니다. 몇 사람에게 내 생각을 말했지만 강요한 것은 아니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2005년 LG그룹에서 에너지, 홈쇼핑, 건설 등의 계열사가 GS그룹으로 분리되는 과정에서도 구 명예회장의 경영 철학이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졌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는 ‘한번 사귀면 헤어지지 말고 부득이 헤어지더라도 적이 되지 말라’는 유지를 구 명예회장에게 남겼고, 구 명예회장 역시 인화를 강조해 왔기에 LG와 GS는 경영권 분쟁 등 불화 없이 ‘아름다운 이별’을 맺었다는 것이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