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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로 월드컵, 감독으로 아시안컵…한국과 연이 깊던 베어벡

입력 | 2019-11-29 10:01:00

거스 히딩크 감독(맨 오른쪽)을 보좌해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었던 핌 베어벡(오른쪽에서 두 번째) 감독이 암투병 끝에 사망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 뉴스1


한국 축구와 가장 인연이 깊은 외국인 지도자를 꼽으라면 단연 거스 히딩크 감독이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4강 신화를 작성, 세계를 놀라게 했던 히딩크 감독은 신드롬급 반향을 일으키면서 국민적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시의 성과는 물론 대회 전후에 미친 기여도까지 두루 종합할 때, 한국 축구는 히딩크 감독 전과 후로 나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큰 영향을 준 지도자다. 짧고 굵게 남긴 임팩트는 히딩크 감독이 가장 크다. 하지만 ‘기간’만 따졌을 때는 히딩크 감독 버금가는 인연을 지닌 인물이 핌 페어벡 감독이다.

2002 월드컵 때 히딩크 사단의 코치로 한국 축구와 인연을 맺었던 베어벡 감독은 4년 뒤 또 다른 네덜란드 출신 지도자 딕 아드보카트와 독일 월드컵에 다시 나섰고 이후 아예 지휘봉까지 잡아 아시안컵까지 이끈 특별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런 베어벡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

‘시드니모닝헤럴드’ 등 호주 언론들은 28일 밤(한국시각) “네덜란드 출신의 지도자 핌 베어벡 감독이 암투병 끝에 사망했다”고 전했다. 지난 2월 오만 대표팀의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베어벡 감독은 병마와 싸우다 향년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1956년 3월12일 네덜란드 로테르담 태생의 베어벡 감독은 현역 시절에는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던 축구인이다. 10대 후반의 나이로 자국 스파르타 로테르담을 통해 프로에 데뷔했으나 1980년 25세에 불과한 나이에 은퇴했으니 그리 내세울 것 없는 선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도자로서는 달랐다. 그의 지도자 커리어 중심에 한국이 있다.

은퇴 후 일찌감치 지도자의 길을 걸은 베어벡 감독은 데 그라프샤프, 페예노르트, 그로닝겐, 포르튀나 시타르트 등 네덜란드 클럽들에서 커리어를 쌓은 뒤 1998년 일본 J리그 오미야 아르디자의 지휘봉을 잡고 아시아 무대를 밟았다. 그리고 2000년,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 2002 한일 월드컵을 준비하던 한국대표팀에 승선해 4강 진출에 일조했다.

월드컵이 끝난 뒤 베어벡 감독은 아인트호벤 감독으로 보직을 옮긴 히딩크 감독과 발맞춰 아인트호벤 2군 감독직을 맡는다. 이후 교토 퍼플상가 감독, 보루시아 뮌헨그라드바흐 코치, UAE 대표팀 코치 등을 역임한 베어벡 감독은 2005년 대한축구협회와 다시 계약을 맺고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도와 2006 독일월드컵에도 나섰다. 이때까지는 한국 팬들에게 인상이 좋았으나 마무리는 썩 아름답지 않았다.

독일 월드컵 후 아드보카트 감독이 러시아 제니트 사령탑으로 떠난 뒤 베어벡 감독이 지휘봉을 승계, 직접 한국대표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2007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4국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을 이끌었던 베어벡 감독은 3위라는 비교적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으나 8강부터 일본과의 3/4위전까지 단 1골도 넣지 못하는 답답한 경기 내용으로 혹평을 받았고, 결국 대회 후 자진사퇴했다.

참고로 베어벡 감독 사퇴 후 축구계에는 이제 국내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고 이후 허정무-조광래-최강희-홍명보-신태용까지 국내 지도자들이 대표팀을 이끈 바 있다. 그러다 2014년 울리 슈틸리케 감독에 이어 현재 파울루 벤투까지, 방향은 다시 외국인 지도자로 수정된 모양새다.

마무리는 깔끔하지 않았으나 한국축구를 통해 인지도를 쌓은 베어벡 감독은 곧바로 호주축구협회의 러브콜을 받았고, 호주대표팀을 2010년 남아공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키며 반전에 성공했다. 이번 사망 소식이 호주 언론에서 쏟아진 것에서 알 수 있듯 호주에서의 평판은 좋았다.

호주를 떠난 뒤 베어벡 감독은 모로코 U-23세 이하 대표팀을 이끌었고 지난 2016년부터 오만대표팀을 지휘했다. 올해 초 UAE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오만 축구 역사상 최초의 16강 진출을 이끄는 등 지도력을 발휘했으나 끝내 암을 극복하지 못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