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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온실가스 줄이려다 사업 접을판”…기업들, 탄소배출권제에 비명

입력 | 2019-11-27 19:10:00


동아일보DB

지구온난화의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탄소배출권 거래제’ 때문에 기업들이 생산량마저 줄일 위기에 놓였다. t당 1만~2만 원대를 유지하던 탄소배출권의 가격이 꾸준히 오르다 올 들어 4만 원 가까이로 폭등하면서 기업들이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탄소배출량이 많은 철강·시멘트 업계 등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27일 철강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의 한 대형 철강사는 내년 사업 계획을 수립하면서 탄소배출권과 관련해 2020년 한 해에만 약 1000억 원의 추가 비용이 들 것으로 봤다. 2015년부터 시작돼 3년 단위로 정산하기로 한 거래제에 따라 2018~2020년 사이에 들어갈 총 추가비용은 2200억 원이다. 이 회사가 갑자기 이 같은 부담을 지게 된 건 2013년에 완공된 고로 3기의 생산량이 꾸준히 늘면서 탄소배출량이 5%가량 늘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3년간 고로에서 생산되는 전체 철강 생산량의 10% 이상인 400만 t 이상 감산해야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하는 처지”라고 했다.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탄소배출권을 사야 하지만 배출권 물량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최근 탄소배출권 시장에서는 하루 거래량이 1만5000t 내외에 그칠 정도로 물량이 부족해서 가격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탄소배출량이 많은 기업이 과거 배출한 온실가스를 기준으로 단계적으로 감축된 배출량을 배정받고 이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 배출하려면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서 이를 채우는 식으로 운영되는 제도다.

기업들은 “정부의 탄소배출 감축 목표가 너무 높게 설정돼 산업 경쟁력 자체를 위협한다”고 호소한다. 정부는 2030년 국내에서 약 8억5100만 t의 온실가스 배출을 예상하면서도 이보다 37%가량을 줄인 5억3600만 t에 맞추겠다는 목표를 2015년에 세웠다. 발전·수송 등을 제외한 산업 부문만 떼놓고 봐도 2030년 4억8100만 t의 온실가스 배출을 예측하면서 3억8240만 t을 배출 목표로 세워 20% 이상의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2021년부터 시작되는 3차 감축 기간에 돌입하면 600개 기업 대부분이 탄소배출권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거래제로 인한 비용 부담은 결국 중화학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시멘트 업계는 산업의 존립까지 우려하고 있다. 시멘트의 t당 가격은 철강 제품의 10분의 1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t당 4만 원에 육박하는 탄소배출권을 대량 구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멘트 업계의 매출액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은 철강(1.6)이나 발전에너지(1.7)에 비해 월등히 높은 7.5 수준이다. 한국시멘트협회 관계자는 “배출권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수출경쟁력은 이미 약화된 상황이고 내수 출하를 제한해야 하는 상황이 목전에 왔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국제적인 목표에 기업이 동참해야 하지만 산업경쟁력을 위협하지 않도록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탄소배출권이 원활하게 거래되도록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업을 압박하는 대신 해외의 친환경 발전소 설립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온실가스 배출 감축량을 인정받는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EU는 자국 기업에 탄소배출에 대한 규제를 비교적 느슨하게 적용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이 거의 없는데 우리는 탈원전으로 에너지 정책이 바뀌면서 갑자기 탄소사용량이 늘었는데도 기업에 과한 부담을 요구한다”며 “기업이 탄소배출권을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