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 국내대학 첫 ‘AI 백일장’ ‘알파고’처럼 텍스트도 딥러닝… 참가자와 한문장씩 번갈아 창작 ‘감성충만’ 문장 거침없이 띄워… SNS 공부한 AI, 신조어도 자유자재
21일 오후 경기 수원시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삼성학술정보관에서 열린 인공지능(AI) 백일장 ‘AI X Bookathon‘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만약(IF)‘이란 주제로 AI를 이용해 글을 쓰고 있다. 수원=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가을에 취한 듯 감성 충만한 글. 하지만 인간의 작품이 아니다. ‘글쓰기 인공지능(AI)’ 프로그램에 ‘가을이 오면’이라고 입력하자 AI는 연필로 꾹꾹 눌러쓰듯 유려한 문장을 만들어냈다. “캄캄한 밤하늘의 허공에 떠있는 연인이 손에 잡힐 듯하다”는 문장으로 문단을 끝마쳤다.
성균관대는 21, 22일 이틀간 경기 수원시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서 국내 대학 최초로 AI 백일장 행사인 ‘AI×Bookathon(부커톤)’ 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는 해커톤(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로 한정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결과물을 완성하는 대회) 방식을 본떠 21일 오후 3시 반부터 다음 날 오후 4시 반까지 약 25시간 동안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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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지나자 참가자들은 학습을 마친 AI와 함께 창작에 돌입했다. 참가자들이 AI가 설치된 노트북에 하나의 단어 또는 문장을 입력하면 AI가 그 다음 문장을 쓰는 식이었다.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는 내용의 문학 작품을 쓰기로 결심한 한 참가자는 “어릴 땐 서른이면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라고 입력했다. AI는 곧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고 받았다.
글의 내용이나 문체는 사람이 AI를 어떻게 학습시키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라온 글을 학습한 AI의 문체는 통통 튀었다. 한 참가팀의 AI는 ‘뇌피셜’(공식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닌 개인적인 생각)이란 신조어까지 쓰며 글을 이어갔다. 반면 고전문학이나 수필, 원로 작가가 쓴 작품의 텍스트를 학습한 AI는 한자어나 사자성어를 자주 사용했다. 학습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AI는 이해할 수 없는 엉성한 수준의 글을 내놨다.
심사위원들은 AI 활용도와 문학성을 기준으로 출품작을 평가했다. 이날 대상을 수상한 작품은 노인인 화자가 과거의 삶을 회상하면서 여러 가지 ‘만약’의 경우에 대해 생각하는 회고록 형태의 글이었다. 대상 수상자인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 4학년 김형준 씨(24)는 “AI를 학습시키는 데 공을 많이 들인 만큼 AI가 마치 제 자식처럼 느껴졌다”며 “AI가 예상보다 더 완성도 높은 글을 내놓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수원=김소영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