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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서열화 없앤다지만… 강남-목동 쏠림현상 더 심해질 우려

입력 | 2019-11-08 03:00:00

[외고-국제고-자사고 2025년 일괄폐지]
교육부 “서열 사라지고 공정교육”… 교육계 “지역불평등 조장” 반박
교육특구-타지역 교육격차 커질듯… 명문학군 부동산값 벌써부터 들썩
학생 적은 지방 학교 “문닫을 위기”… “아이 진학 어쩌나” 학부모도 혼란




“자사고 폐지”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2025년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의 일괄 일반고 전환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자사고와 특목고 폐지를 주장해온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오른쪽에서 첫 번째) 등 시도교육감 5명도 참석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울 강남을 비롯한 교육특구 지역의 부동산값이 벌써부터 들썩일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폐지하는 게 국민 평등을 위한 것인지, 지역 불평등을 심화하기 위한 정책인지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육부가 자사고 등에 ‘5년 시한부 선고’를 발표한 7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에 모인 서울자사고학부모연합회 소속 학부모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와 함께 기자회견을 연 학부모들은 “자사고 등을 폐지하면 고교 서열화 문제가 사라지고 모두에게 공정한 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는 교육부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교육계에서는 2025년부터 자사고 등이 모두 일반고로 전환되면 이른바 서울 강남구나 양천구 목동 등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또 전국 단위로 학생을 선발해 온 지역 자사고 등이 학생 수 부족으로 존폐 위기에 내몰리면서 지방의 거점 고교가 한꺼번에 몰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 “강남 8학군 부활, 이사 수요 증가할 것”


자사고 등이 일반고로 전환하면 서울 강남이나 목동 등 이른바 교육특구와 다른 지역 간 교육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우선 이들 지역의 명문고로 불리던 기존 일반고에 더욱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일반고로 바뀌는 자사고 등도 지역별로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자사고는 대부분 교육특구에 있는 곳이 경쟁률이 높고, 그렇지 않은 곳은 미달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8학군’에 명문 일반고 수가 늘어나는 셈이다.

“폐지 반대” 7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서울자사고학부모연합회와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가 정부의 일반고 전환 방안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두 단체는 정부의 무책임한 결정으로 교육계에 혼란과 갈등이 가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이들 지역으로의 이사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이사는 “초교 4학년 이하 학생들이 중학교에 진학하는 시점부터 8학군으로 본격 이동할 수 있다”며 “고교 유형 간 격차가 일반고 간 지역 격차로 모양만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고 전환 직전까지 5년간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에 지원이 몰릴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다른 일반고가 비약적으로 발전하지 않는 이상 오랜 기간 교육 프로그램과 입시 실적 등으로 명성을 쌓아온 학교를 학부모들이 더 신뢰하기 때문이다.

교육계에서는 정부 방안이 하향평준화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왜 자사고 등이 선택받는지 분석해 일반고에 도입하면 되는데 모조리 없애면 하향평준화로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강남 쏠림 우려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최근 통계를 보면 그 영향이 실체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학생 모집 어려운 지방학교는 몰락 우려


지방에서 전국 단위로 학생을 선발해 온 자사고 10곳과 일반고 49곳은 존폐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방은 수도권보다 학령인구 급감 문제가 더 심각한 상황이다. 강원 횡성군 민족사관고나 전북 전주시 상산고는 서울과 경기 지역 학생이 많이 진학했다. 하지만 일반고로 전환하면 각각 강원 지역이나 전주 지역(또는 전북도내 비평준화) 학생으로 채워야 한다.

농촌형 자율학교이면서 일반고로 전국에서 학생을 받아온 충남 공주시 한일고는 주변 중학교 졸업생이 매년 6∼9명에 불과하다. 자사고인 경기 용인외대부고도 인근에 중학교가 한 곳뿐이다. 한 학교 관계자는 “학교 문을 닫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학부모들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초교 4학년 자녀를 둔 A 씨는 “민사고에 보내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없어진다니 황당하다”며 “공부에 흥미를 느끼는 아이를 심화학습시키는 학교에 보내는 게 그렇게 욕심인 건가”라고 말했다. 학부모 B 씨는 “자사고가 없어진다고 진학 준비를 그만뒀다가 나중에 정권이 바뀌어서 부활한다고 하면 내 아이만 손해 보는 것 아니냐”고 했다.

최예나 yena@donga.com·강동웅·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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