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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모의 공소남닷컴] ‘동굴 샤우팅’…마성의 드라큘라가 돌아왔다

입력 | 2019-11-08 05:45:00

1998년, 2000년, 2006년 세 차례에 걸쳐 드라큘라 역을 맡았던 ‘전설’ 신성우가 13년 만에 치명적인 매력의 드라큘라로 돌아왔다. 더욱 깊어진 캐릭터 해석과 연기로 전설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는 신성우. 사진제공|메이커스 프로덕션


■ 전설 신성우의 뮤지컬 ‘드라큘라’

어두침침하고 음습한 체코 원작
화려한 영상의 한국 버전 재탄생
13년만의 드라큘라 역 연기 절정


보기만 해도 비호감인 송곳니를 멀쩡한 사람들의 목에 박아 넣어 피를 빨고, 수백 마리 박쥐(역시 비호감)가 되어 몰려다니는가 하면, 관 뚜껑을 열고 들어가 두 팔을 가슴 앞에 포갠 채 잠을 청하는 인간, 아니 괴물.

“도대체 이런 캐릭터가 왜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는 거야?”하면서 또 슬금슬금 뮤지컬 ‘드라큘라’가 공연 중인 서울 양재동 한전아트센터로 향해버렸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신성우의 드라큘라가 보고 싶었다. 신성우는 1998년 국내 초연 때 드라큘라를 맡았는데, 이것이 그의 뮤지컬 데뷔작이었다. 평소 이 작품과 배역에 대한 그의 애정이 각별함을 알고 있었기에 “이건 꼭 봐야 해”하고 나의 무의식에 꾹꾹 눌러 써놨던 모양이다.

신성우의 ‘드라큘라’는 체코 뮤지컬이다. 김준수가 드라큘라로 출연해 ‘샤쿨’로 유명했던 ‘드라큘라’는 미국 브로드웨이 버전으로 이 작품과는 원작만 같을 뿐 음악도 대본도 무대도 다르다.

체코는 알려져 있듯 클래식 음악 강국. 드보르작, 야나체크 같은 작곡가가 체코 출신이고 라파엘 쿠벨리크, 바츨라프 노이만, 이리 벨로흘라베크 같은 명지휘자들도 있다. 그래서일까. 체코 버전 드라큘라는 원래 매우 클래시컬한 작품이라고 한다. 초연 때는 뮤지컬 배우가 아닌 오페라 가수들이 출연했을 정도라고.

하지만 이번 ‘드라큘라’는 곳곳에 수정을 가해 지극히 한국적인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대표적으로 무대다. 체코 원작이 어두침침하고 음습한 분위기였다면 한국 버전은 예쁘게 느껴질 정도다. 요즘 트렌드에 맞게 영상이 대거 사용되었는데, 오프닝의 영상을 보면서부터 ‘훅’ 빠져들었다. 드라큘라의 분신인 박쥐 떼가 우르르 날아 한 지점에 모여들면 드라큘라가 ‘짠’하고 등장하는데 영상과 실사의 기막힌 조화에 탄성이 목구멍을 열고 나오게 된다.

그럼 이제 신성우 드라큘라 얘기를 해보자. 과연 ‘전설’ 소리를 들을 만한 존재감이다. 무대 위에 세워 놓으면 그냥 드라큘라라는 느낌이다.

신성우는 로커답게 소리의 개성이 엄청 강한 배우인데 이 작품, 이 캐릭터에는 제대로 꽂혔다. 동굴 깊은 어둠 속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듯한 거칠고 눅눅한 소리. 1막 마지막, 드라큘라의 포효는 “나는 전설이다”를 외치는 것 같았다. 슬픔과 분노, 원망, 배신, 복수, 좌절을 몽땅 때려 넣은 듯한 야수의 샤우팅.

반헬싱 역의 문종원은 이글거리는 분노를 잘 드러내는 배우다. 사악하고 밉지만 객석에서조차 저항하기 힘든 공포와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전작인 ‘벤허’의 ‘메셀라’와는 또 다른 결이다.

신성우(왼쪽)와 아드리아나로 분한 권민제. 사진제공|메이커스 프로덕션


드라큘라의 연인 아드리아나는 권민제(선우)가 맡았다. 가수 출신이라 노래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연기도 잘 하는 배우다. 그가 연극 ‘신의 아그네스’에서 아그네스 수녀 역을 연기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디미트루를 맡은 ‘미성의 최성원’도 반가웠다.

드라큘라는 400년을 기다려 만난 아내 아드리아나의 곁을 떠난다. 아드리아나를 마지막으로 포옹하며 드라큘라는 ‘아드리아나’가 아닌 현생의 이름을 불러준다. 이 장면이 상당히 ‘뜨끈’하다. 예상했지만, 체코 버전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PS. 공연이 끝난 후 신성우를 잠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이날 공연을 떠올리며 “그 장면에서는 박수가 나오면 안 되는 건데 박수가 나왔다. 내가 노래를 너무 못 불렀구나 싶다”며 자책을 했다. 세상에 ‘그냥 되는 전설’은 없다. 마치 장단콩을 로스팅해 만든 아메리카노처럼.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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