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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신자의 치유[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11〉

입력 | 2019-10-23 03:00:00


증오와 반목이 난무하는 시대에도 화해와 공존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2015년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한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가 특히 경계한 것은 유대인들의 광신주의였다.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치고 들어앉았으면서도 그들을 악이라고 생각하고 증오하는 광신주의. 생전에 그는 이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는 2002년 독일에서 그 고민이 묻어나는 얘기를 했다. 그는 동료 작가이자 친구인 이스라엘 작가 사미 미카엘의 실제 경험담을 예로 들었다. 어느 날 친구가 이스라엘에서 오랜 시간 택시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운전사가 대뜸 “아랍놈들을 하루빨리 몰살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친구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차분히 대응했다. “그렇다면 누가 아랍인들을 죽이죠?” 그러자 운전사는 누구긴 누구냐며 ‘우리 모두’가 공평하게 분담하면 된다고 말했다. 각자 몇 명씩 맡아 죽이면 된다는 거였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만 친구는 조금 더 나아갔다. “그럼 당신이 맡은 지역에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아랍인들을 일일이 확인해 죽였다고 합시다. 그렇게 임무를 완수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어딘가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면 다시 올라가서 그 아기까지 죽여야 합니까?” 그러자 운전사는 멈칫하며 대답했다. “당신은 너무 잔인한 사람이군요.”

오즈가 청중에게 이 일화를 얘기한 것은 광신자들이 상상력의 빈곤에 시달린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친구가 운전사에게 아기를 떠올리게 했듯 그들의 마음에 상상력을 불어넣으면 아무리 광신자라 하더라도 인간성을 회복할 여지가 없지 않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광신주의라는 질병을 일거에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거였다. 오즈는 201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러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작가였다. 광신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이 시대, 이 세계에 더 많은 오즈들이 필요한 이유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