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안’에 대해 재계가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시행령 개정안의 골자는 상장사 주식의 5% 이상 대량 보유한 기관투자가의 보고 및 공시 의무를 완화해 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실상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의 경영개입 권한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시행령 개정안은 투자자의 경영개입으로 인정할 수 있는 범위를 축소해 기업의 경영권 안정성을 훼손하고 있다”며 “전면 철회를 건의하는 경영계 의견을 정부에 제출했다”고 16일 밝혔다.
● 연기금 주주권 행사 확대가 골자
정부는 지난달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에 발목을 잡아 온 이른바 ‘5%룰’을 완화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표하고 입법예고 했다. 이날로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면 규제개혁위원회와 법제처 심사를 거쳐 내년 1분기(1~3월) 중에 본격 시행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5% 이상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과 ‘단순투자’로 구분한다. 경영 목적이 있으면 지분의 보유목적과 자금 조성 내역 등을 5일 내로 상세히 금융감독위원회 등 관계당국에 보고하고 공시하도록 돼 있다. 단순투자는 약식보고를 하면 된다.
이번 정부 개정안에서는 공적연기금은 경영 목적이 있어도 5일 내로 약식보고만 하면 되도록 했다. 무분별한 주주권 행사의 통제 장치 역할을 한 상세보고 의무가 사라진 것이다. 상세보고 의무는 매우 중요하다. 만일 보고 내용을 거짓으로 기재하거나 중요한 사항을 누락하면 투자자(개인 또는 법인이나 기관)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기 때문이다.
공적연기금의 정관 변경 요구를 경영개입 인정 범위에서 제외했다. 정관은 지배구조 등 기업경영의 가장 핵심적인 규율을 담고 있다. 주주가 손해가 생길 염려가 있을 때 위법행위 중단을 청구하는 ‘위법행위 유지청구권’과 주주총회에서 임원 해임이 부결됐을 경우 법원에 해임을 청구할 수 있는 ‘해임청구권’도 경영개입 행위에서 제외됐다. ‘대외적인 의사표현’도 제외됐고 ‘배당정책 변경 요구’는 아예 삭제됐다.
● “행동주의펀드 먹잇감 될까”
경총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주요기업의 지분을 5%이상 대량 보유한 투자자는 국민연금과 외국계 투기펀드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현재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과 노사 대표,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돼 있어 스튜어드십 코드 운영을 통해 정치권의 기업 경영개입과 규제 메커니즘으로 작용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영국과 독일 등 유럽 선진국은 3% 지분 보유 시 2일 이내에 보고하도록 하는 등 보고와 공시 의무를 강화하는 추세다.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은 “공적연기금의 공시의무를 일반 투자자보다 오히려 더 약하게 규정하는 나라는 한국 뿐”이라고 지적했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