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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갈등과 혼란은 공도가 무너진 탓[DBR]

입력 | 2019-09-23 03:00:00


중종 21년(1526년)의 조선은 혼란스러웠다. 7년 전 기묘사화로 조광조를 비롯한 선비들이 참화를 입은 이래, 조정에는 강직한 목소리를 내는 신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가뭄과 병충해가 수년째 계속됐고 그해 들어서는 전국 각지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나라는 위태로운데 신하들은 갈라져 이익을 탐하고 서로를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작금의 상황이 답답했던 중종은 과거시험에 다음 문제를 출제했다.

“좋고 싫음과 옳고 그름이 합당해야 조정이 바르게 되고 정치와 교화가 한결같아진다. 지금은 좋고 싫음이 경도되고 옳고 그름이 어긋나 어그러져 있다. 옳고 그름을 말할 때도 그저 자기 생각만 따를 뿐 공론(公論)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이를 어찌해야 하겠는가?”

‘좋고 싫음과 옳고 그름(好惡是非)’은 심리나 윤리의 영역으로 보이지만 공동체 경영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리더는 가치 판단의 기준이 서로 다른 데서 생겨나는 갈등과 대립을 해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종의 고민도 여기에서 비롯한다. 중종의 시험 문제에 김의정(1495∼1547)이 쓴 답안지를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공도(公道)’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정에서 공도가 행해지면 선과 악이 변별돼 상벌을 순리대로 시행할 수 있습니다. 공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공론이 막혀 사람들의 생각이 소통되지 못하니 옳고 그름, 좋고 싫음을 판단하기가 어지러워집니다.”

여기서 공도란 유교 경전 ‘서경’과 ‘주역전의’ 등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공정한 도리, 방법, 원칙 등을 뜻한다. 유학자들은 정치가 공도에 입각해 펼쳐져야 나라와 백성에게도 보탬이 되는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의정도 공도가 전제돼야 비로소 올바로 판단하고 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고 여겼다.

무릇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각자의 생활 세계가 다르고 신념이나 가치관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옳고 그름은 그 자체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환경에 입각해 ‘옳다고 여겨지는 것’ ‘그르다고 여겨지는 것’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상대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개인적인 차원이라면 내가 고심해서 결정하고 책임을 지면 그만이지만 공동체 차원에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조율하는 합의의 과정이 필요하다. 김의정이 말하는 공도란 올바른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공정하고 투명하며 사심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조정이 그렇게 운영돼야 조정에 참여하는 신하들과 정책 담당자들도 각자의 사사로운 욕심이나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무엇이 좋은 선택인지, 어떤 것이 올바른 결정인지를 살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의정이 보기에 당시 조정은 그렇지 못했다. 신하들이 각자 자기 생각만 고집하느라 상대의 의견을 듣지 않았고, 모두 자기가 가장 잘났다고 주장하면서 내가 무엇이 더 나은지, 상대는 무엇이 더 못한지를 가려내지 못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공도가 부재하기 때문이었다. 최고 리더인 임금이 공도를 확립하지 못했고 조정에서 공도를 실천하지 못했다. 만약 나라에 공도가 펼쳐져 있다면 구성원들 또한 공정하게 시시비비를 가릴 것이다. 공도에 따라 정의와 원칙이 구현되고 의사결정이 투명하게 이뤄진다면 사람들은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을 판별할 것이다.

오늘날 국가경영이나 기업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의견의 대립이나 충돌은 있을 수밖에 없다.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느냐에 따라, 어떤 가치를 보다 중시하느냐에 따라 좋고 싫음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에 차이가 생겨난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 여야의 대립, 고용자와 노동자의 대립, 사업부서와 지원부서의 대립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대립 자체는 각자가 처해 있는 위치상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양보하며 차이를 좁혀야 시너지를 발휘하고 갈등으로 인한 불필요한 힘의 낭비도 예방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과 원칙이 지켜지고 공동체가 바르고 공정하게 운영되며,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생각이 막힘없이 소통되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문화가 마련돼야 한다. 김의정이 말한 공도의 뜻도 여기에 있다.

이 원고는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81호에 실린 글 ‘조정의 갈등은 공도(公道)가 바로서지 못한 탓’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김준태 성균관대 유학대학 연구교수 akademie@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