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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Case Study]취향 맞는 사람들과 독서토론… ‘관계’를 팝니다

입력 | 2019-09-11 03:00:00

50억 투자 유치-5600명 회원 확보한 유료 독서클럽 ‘트레바리’




트레바리는 독서라는 ‘힙한 활동’에 강제성을 부여하고 취향이 통하는 사람들과 네트워킹할 수 있는 ‘관계’란 가치를 지향하면서 창업 4년 만에 주목받는 스타트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트레바리 제공

한 달에 한 번, 한 권씩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고 모여서 토론을 해야 한다. 내 돈 내고 책 사면서 가입비도 따로 내야 한다. 그것도 1만, 2만 원이 아니다. ‘클럽장’이라는 리더가 있는 클럽의 경우 한 시즌, 즉 넉 달간 네 번의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약 30만 원을 내야 한다. 회당 7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모임 이틀 전까지는 반드시 400자 이상의 독후감을 써내야 한다. 이걸 제출하지 않으면 그날의 독서모임에 참여할 수도 없고 당연히 환불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돈과 시간, 노력을 들여가며 꾸역꾸역 이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비즈니스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그동안 없었다. 윤수영 대표가 창업한 유료 독서클럽 트레바리는 바로 이 ‘말이 안 될 것 같은’ 비즈니스 모델로 지난 4년간 급속히 성장해 왔다. 2015년 9월 4개 클럽, 80명의 멤버로 시즌제를 처음 시작한 이래 2019년 7월 말 현재 멤버 수 5600여 명에 경영경제, 대중문화·예술 등을 비롯한 총 8개 카테고리 344개 클럽이 운영 중이다. 이 중에서 23%를 차지하는 80개 정도의 클럽이 ‘클럽장이 있는 클럽’, 즉 약 30만 원의 멤버십 비용을 받는 비싼 클럽이다. 장소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건물의 공간 하나를 빌려 시작한 이후 현재 안국, 성수, 강남을 포함해 네 곳의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창업 4년 만에 56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50억 원 규모의 투자 유치까지 이끌어낸 트레바리의 성장 배경과 성공 요인을 DBR(동아비즈니스리뷰)가 280호(2019년 9월 1일자)에서 분석했다.

○ 트레바리는 무엇을 파는가?


윤 대표는 트레바리가 ‘헬스장 가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아무도 책 읽는 걸 구리다거나 ‘힙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런데 사람들은 온갖 핑계를 대며 하지 않는다. 귀찮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그래서 사람들은 헬스장을 등록하고 비싼 돈을 내고 퍼스널 트레이닝(PT)을 받는다. 트레바리도 스스로를 강제하기 위해 가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강제성 부여, 동기 부여 이외에도 트레바리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거나 이를 주도할 때 겪게 되는 ‘치명적 불편’을 해소해 준다. 독서모임은 장소 선정, 독후감 취합, 당일 모임 참여 여부 관리 등 세세하고 귀찮은 일이 많이 발생하는데, 이를 누군가 해결해 주지 않으면 한 명이 ‘앓느니 죽는’ 심정으로 큰 희생을 해 모임을 이끌게 되고 그마저도 안 되면 금방 동력을 잃는다. 트레바리가 제공하는 서비스 중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건 바로 이 ‘귀찮음과 불편의 해결’이다.

또한 트레바리가 제공하는 서비스 가운데 매우 중요한 가치는 바로 ‘관계’다. 즉 트레바리가 판매하는 것은 책을 매개로 한 ‘모임 상품’이며, 사람들은 책 선정을 통해 같은 취향으로 필터링된 이들과 조우한다. 이러한 ‘취향 공유 모임과 경험’은 결국 ‘관계 맺음’으로 연결된다. 클럽장이 있는 클럽의 경우 10만 원가량을 더 내는 것 이상의 가치를 주는 ‘관계’를 판다고 볼 수 있는데,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과 같은 명사나 전문가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며 지식을 배우고 네트워킹할 수 있는 공간은 트레바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취향에 맞는 관계 맺음’, 더 나아가 ‘내가 만나고 싶은 명사나 전문가와의 관계’가 트레바리가 궁극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인 셈이다. 송수진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는 “‘불편’, ‘불안’, ‘낭비’는 소비자의 총족되지 않는 욕구를 표현하는 구체적인 키워드”라며 “가치만 있다면 소비자들은 자신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서비스, 불안함을 해결하는 기업, 낭비를 줄여주는 제품에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고 설명했다.

○ 트레바리의 미래


트레바리는 세밀한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고, 전략을 짜고 기획하는 식으로 비즈니스를 해오지는 않았다. 때론 즉흥적이고, 때론 무모할 정도로 빠르게 ‘될 것 같다’ 싶은 걸 실험해 보고 실행한 뒤 성과가 나면 살리고 아니면 폐기하는 등의 애자일(agile·민첩한)하고 유연한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그렇다면 트레바리는 ‘플랫폼 비즈니스’일까? 얼핏 보면 ‘모임 플랫폼’처럼 보이지만 윤 대표에 따르면, 아직은 제조업에 가깝다. 독서클럽을 외주 형식으로 고객들의 요청과 기획에 따라 만들어 팔든, 클럽장이 있는 클럽처럼 더 큰 부가가치를 얹고 브랜딩을 해서 팔든 결국 ‘(독서)클럽’을 파는 게 핵심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러한 클럽이 궁극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역시 ‘관계’다. 앞으로 트레바리가 그냥 플랫폼 사용료만 받고 특별한 노력과 비용을 투자하지 않으면서 서비스 제공자와 구매자들이 만날 수 있도록 세팅이 되면 그때부터는 진정한 플랫폼 비즈니스가 된다는 게 윤 대표의 생각이다.

2016년 1월부터 트레바리가 각종 강연과 체험을 하는 단기 이벤트를 만들어 진행해 오는 것이나, 큰 주제를 갖고 분기별로 한 번 정도씩 진행하고 있는 콘퍼런스 등은 트레바리의 미래와 관련돼 있다. 클럽을 만들어 팔며 ‘관계’를 제공하는 제조업에서 모든 경험과 취향이 공유되고 상호 교류를 통해 네트워킹이 이뤄지는 플랫폼 비즈니스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의 일부라는 의미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