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원 홈스틸로 본 도루의 세계
“훔쳐야 이긴다” 29일 서울 고척에서 열린 키움과 롯데의 경기. 3회 무사 1루에서 키움 김혜성(오른쪽)이 도루에 성공하고 있다. 김혜성은 후속 타자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아 선제 득점을 기록했다. 뉴스1
이에 대해서는 ‘도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던 팀들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려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도루의 득점 가치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야구통계 전문가 톰 탱고는 1루 주자가 도루에 성공했을 때의 기대 득점은 0.175점이지만 실패했을 때는 0.467점이 깎인다고 계산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성공률 72.7%를 도루의 ‘손익 분기점’으로 봤다. 이 수치는 넘어야 도루로 얻는 이익이 손해보다 커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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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정적인 1점’을 만들어야 할 때 도루의 가치는 크게 올라간다. 팽팽한 승부에서 주자가 한 베이스를 더 나가는 것은 득점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도루 시 기대 득점은 변하지 않지만 도루로 얻은 1점이 승패와 직결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정규리그 막판 순위 싸움이나 포스트시즌 등 1승이 간절할 때 도루는 중요한 득점 옵션이 된다.
‘도루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상대 배터리에 심리적인 압박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도루의 숨은 가치다. 염경엽 SK 감독은 “투구부터 포수의 2루 송구까지 3.3초 안에만 이뤄진다면 도루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주자의 속도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루 성공률이 높은 주자가 있을 때 배터리가 심리적인 긴장을 느껴 실수가 나올 때가 많다”고 말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