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 여성가족부 차관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은 견디기 어려운 통증 이상으로 사람을 무너뜨린다. 영원히 모욕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이 호소는 보통 사람은 엄두도 낼 수 없는 흉악 범죄의 피해자가 아니라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는 손쉬운 반면 피해는 길고 고통스럽다. 디지털 매체의 특성상 지워도 안심할 수 없으니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생명을 버리고 싶어 할 정도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보면, 연예인부터 옆자리 승객, 믿었던 연인까지 죄의식 없이 행하고, 들켜도 ‘단순 호기심’이라고 둘러대는 불법 촬영과 동영상 유포가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여성가족부가 불법 촬영·유포 영상물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를 운영한지도 1년 반이 다 되어간다. 지원센터가 올 상반기 삭제를 지원한 건수는 4만6000여 건에 달한다. 지난해 8개월간 삭제한 2만9000여 건을 훌쩍 넘어섰다. 올해 상담원을 더 늘리고 삭제 지원 노하우가 쌓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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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불법 영상물 유포를 신속히 차단하기 위해 전자심의제도를 도입할 계획이고,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도록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국회에 계류 중인 ‘변형카메라의 관리에 관한 법률안’ 등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법안들도 하루빨리 통과되기를 바란다.
정부의 대응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나부터 불법촬영물을 보지 않는 것, 나부터 불법촬영물을 단체 채팅방에 공유하지 않는 것, 나부터 채팅방에 누군가 불법촬영물을 공유하는 것을 목격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내는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 그런 ‘나’가 여럿이 되어야 디지털 성범죄 근절은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김희경 여성가족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