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현 작가
“우와, 이건 완전히 점령된 숲, 잡초왕국이네.”
지구 저쪽은 비가 안 와 뜨거운 태양에 식물들이 노랗게 말라비틀어졌는데 이쪽은 장맛비에 잡초들이 얽히고설키어 승승장구 올라가고 있었다. 포도는 잎사귀만 겨우 보이고 옥수수는 잡초들에게 포위당해 비실거리고 있었다. 이래서 농사를 짓는 것은 잡초와의 전쟁이라고 하는구나. 이 전쟁에서 인간이 질 수는 없잖아. 생존을 위해 우리의 곡식과 과일을 지켜야지. 나는 승리의 의지를 불태우며 얄미운 잡초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안 돼. 그렇게 뿌리째 뽑으면 땅 속의 좋은 박테리아들이 빛에 노출돼 다 죽어. 이렇게 베어서 눕히는 게 가장 좋아. 백번은 이야기한 것 같은데!”
레돔이 땅과 박테리아, 식물들의 조화로운 관계에 대해서 깐깐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머리 위에는 태양이 이글거리고 목으로 땀이 줄줄 흘러내려 일사병으로 죽을 것 같은데 그런 소리를 하다니 바보 같다. 나는 잡초를 팽개치고 혼자 잘 해보라고 한 뒤 돌아왔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고집쟁이 남자를 욕하다 나도 모르게 곯아떨어졌다. 단잠에서 깨어나니 여전히 폭염이다. 잔에 얼음물을 채워 나가보니 그새 잡초를 많이 베어서 뉘였다.
“저기도 좀 베는 게 어때.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잖아.”
길목에 높이 자란 풀들을 가리키니 그가 한참 그것을 들여다본다.
“그냥 두는 것이 좋겠어. 밭 한편에 야생 상태의 풀이 그대로 자라는 것도 괜찮아. 관리를 할수록 힘들어지는 것이 잡초야. 잡초 씨는 땅이 깨끗할수록 더 빨리 싹을 틔워.”
‘싸우는 식물’이라는 책에서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투쟁하고 생존 전략을 세우는 식물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가장 흥미로운 것이 잡초였다. 질긴 것이 잡초라 생각하지만 사실 잡초는 약한 식물군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식물들의 쟁탈전이 벌어지는 숲에는 잡초군락이 생길 수 없으며 인간이 김을 매는 논이나 밭, 길가 같은 부드러운 땅이 생존적지라고 했다. 땅 속에 숨은 잡초씨앗들은 인간이 풀을 뽑을 때 햇빛에 드러나며 발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김 매주는 인간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 잡초다. 그렇다면 이 전쟁에서의 승자는 결국 잡초가 아닌지 모르겠다. 매면 맬수록 더 잘 올라오는 잡초.
“잡초와 인간, 공생하는 방법을 찾아야겠지. 식물은 인간보다 훨씬 강하고 영리해. 저것 봐. 해바라기와 옥수수 콩이 정말 잘 어울려 자라지?”
신이현 작가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