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 패망사: 태평양 전쟁 1936~1945 / 존 톨런드 지음·박병화, 이두영 옮김 / 1400쪽·5만8000원·글항아리 책임에 대하여 / 서경식, 다카하시 데쓰야 지음·한승동 옮김 / 320쪽·1만8000원·돌베개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뒤 1945년 9월 2일 일본 도쿄만에 정박한 미군 전함 미주리호 위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시게미쓰 마모루 일본 외무대신. 맥아더 장군(왼쪽 마이크 앞 인물)과 미군 장병들이 지켜보고 있다. 동아일보DB
저자의 이런 가정대로 됐더라면, 그러니까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지 않고 태평양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중일전쟁은 2차대전과 별개의 전쟁이 됐을 것이며 일제는 나중에 만주를 잃지 않는 정도에서 중국과 강화를 했을 수도 있다. 물론 ‘김 씨’는 여전히 ‘가네모토(金本) 상’으로 불렸을 지도 모른다.
미국의 저명 전쟁사학자가 태평양전쟁의 전사(前史)인 1931년 만주사변부터 태평양전쟁의 개전과 양상, 일본의 항복까지를 다룬 논픽션이다. 1972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방대한 자료와 인터뷰, 취재를 바탕으로 써서 치밀하고 흥미롭다. 앞부분 1936년 황도파 장교들의 ‘2·26 쿠데타’ 서술부터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박진감이 넘친다. 실패한 이 쿠데타는 오히려 군부가 정치를 더 좌지우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1941년 개전 직전 나가노 해군 군령부 총장은 쇼와 일왕을 만나 일본의 석유 비축량은 2년분이며, 전쟁이 나면 18개월밖에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도 “어떤 상황에서든 선수를 쳐야 한다”고 말했다. 일왕은 말했다. “전쟁은 절망적이겠군.” 일본은 어째서 제 무덤을 판 이 전쟁으로 달려갔는가. 책은 팽팽하던 전쟁파와 외교파가 일왕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종교적 광신에 휩싸이는 과정을 도쿄의 권력 최상층부에 현미경을 들이대며 보여준다.
제목만 보고 최근 한일 갈등 국면에서 ‘심리적 위안’이 될 책이라고 믿는다면 오해다. 저자의 시선은 ‘일본이 이래서 망했다’는 것보다는 무모했지만 강력했던 적을 이해하려는 데 가깝다. 1970년 첫 출간 당시 원제는 ‘The Rising Sun: The Decline and Fall of Japanese Empire’.
이처럼 일왕과 천황제도에 전쟁의 책임을 묻지 않은 종전은 일본이 제대로 된 반성 없이 전후 체제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다수 일본인에게 종전은 강자 미국을 받아들이는 문제였지 반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책임에 대하여’가 다루는 주제로 이어진다.
‘책임에…’는 자이니치(在日·재일) 조선인 2세로 일본의 우경화와 국민주의의 위험성을 비판해 온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 교수와, 일본의 역사왜곡과 인권 문제를 지적해 온 비판적 지식인인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대학원 교수의 대담집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오키나와 미군기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천황제의 모순 등을 다루면서 현대 일본이 퇴행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다카하시 교수는 일본의 현재를 상징하는 천황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천황제가 전쟁 전과 전쟁 중에 야기한 참화에 대해 아키히토 (전) 일왕 자신도, 일본 정부도 공식적으로 반성의 뜻을 표한 적이 없다. 일왕 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천황제”라며 “반 민주주의적 사상이 일본의 정치 속에 뿌리 깊이 남은 것도 천황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천황제는 근대 일본의 몬스터 같은 제도로, 실체 없는 유령 같은 것을 설정해 놓고 대립을 조정하며, 그 결과를 지배층의 이익으로 회수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