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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의 기대 저버린 ‘김정은 2기’[청와대 풍향계]

입력 | 2019-08-06 03:00: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지난달 31일 이동식 실내 지휘소에서 직접 단거리 발사체 시험 발사를 지휘하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문병기 기자

북한이 두 발의 단거리 발사체를 동해로 쏜 2일. 청와대는 긴급 안보 장관회의를 열었다. 북한의 도발에 청와대가 새벽 회의를 열며 긴박하게 움직인 것은 북한이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2017년 11월 이후 1년 9개월 만에 처음. 청와대는 회의 직후엔 북한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 완화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를 중단할 것을 재차 촉구한다”고 했다. 앞선 도발에 비해 한층 강경해진 경고였다.

사실 청와대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북-미 협상이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내부 관측이 많았다가 6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미 회동 직후 다시 기대감을 갖게 됐다. 비핵화 협상의 시계가 다시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청와대의 낙관적 전망에는 ‘하노이 노딜’ 이후 라인업을 재정비한 김정은 2기 체제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이 깔려 있었다. 국가지도자급으로 올라선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김여정의 역할을 대신할 현송월과 대남관계를 맡을 장금철 신임 통일전선부장이 판문점에 총출동하면서 그동안 북핵 협상의 발목을 잡았던 OB(올드보이)들이 퇴진하고 YB(영보이)들이 새로운 판을 주도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완전히 새로운 세대를 중심으로 당 간부들을 재편한다는 의미”라며 “이들은 적어도 자신이 맡은 분야에선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김영철 전 통일전선부장 등 과거 북한 간부들과는 다르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 2기 체제에 대한 청와대의 기대를 뒷받침하는 일화도 적지 않다. 올 2월 하노이 정상회담 당시 미국 협상단은 김 위원장이 제시한 영변 핵시설 폐기 약속의 모호성을 지적하며 “폐기하겠다는 대상이 뭐냐”고 북한 대표단에게 따져 물었다.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미국에 아무런 대답을 내놓지 못하던 북한 협상단이 ‘SOS’를 친 인물은 협상단에서 빠져 있었던 김여정. 김 부부장은 직접 김 위원장을 찾아가 ‘영변 내 모든 핵시설이 다 포함된 것’이라는 답변을 받아왔다는 후문이다.

김영철을 대체한 장금철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반응이다. 한명숙 전 총리 등 노무현 정부 시절 여권 인사들의 방북 실무협상을 맡았던 장금철에 대한 여권의 인상은 “협상할 줄 아는 인물”이라는 평가로 종합된다. 장금철이 이명박 정부 시절 남북 대화파 쪽에 섰다가 숙청되며 한동안 고초를 겪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김정은 2기 체제가 보인 지금까지의 행보는 청와대의 기대와는 한참 어긋나 있다. 북-미 실무협상에 몽니를 부리면서 9일 만에 3차례에 걸쳐 한국을 타깃으로 한 도발을 감행한 북한의 행동은 판문점 회동을 “사실상의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이라고 규정한 문재인 대통령의 평가를 겸연쩍게 만들었다. 특히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겨냥해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연출하며 공동선언이나 합의서 같은 문건을 만지작거리고, 뒤돌아 앉아서는 합동 군사연습 강행과 같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막말을 쏟아낸 것은 남북 정상 간의 남다른 신뢰를 강조해온 청와대로선 아플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5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다시 한번 북한에 유화 메시지를 보냈다. 북핵 협상에 대한 청와대 내부 기류도 낙관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북한이 김정은 2기 체제에 들어서도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듯 연일 도발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선 메아리 없는 공허한 메시지가 될 수밖에 없다. 버릇처럼 한국을 볼모로 협상 테이블의 주인 행세를 하려는 북한의 구태부터 바뀌어야 한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