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년 맞은 민갑룡 경찰청장
23일 취임 1년을 맞는 민갑룡 경찰청장이 1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동아일보와 만나 수사권 조정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민 청장은 지난 1년을 돌이키며 특히 안타까웠던 일로 ‘강남 클럽 버닝썬’ 사태와 ‘고유정 전남편 살해사건’을 꼽았다. 각각 경찰이 마약의 조직적 유통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사건 현장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는 등 수사 초기 대응에서 문제를 드러냈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 청장은 일선 경찰서에서 사건을 접수하면 즉시 ‘위기 대응 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현재는 당직 경찰관이 사건을 접수만 한 뒤 퇴근하면 수사에 착수하기까지 최소 이틀이 더 걸리는데 초동 대처를 충분히 한 뒤 사건을 인계하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민 청장은 “사건이 발생하면 그와 관계된 시민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경찰은 ‘담당자가 정해질 때까지 기다려 보라’고 하는 그런 시스템은 안 된다”고 말했다. 민 청장은 또 경찰이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진국에선 경찰의 역사가 시민에게서 치안에 대한 책임을 위임받는 방식으로 시작됐는데 우리 경찰은 일제 치하에서 태동한 탓에 시민과 대척점에 서는 듯한 일이 많았다는 뜻이다. 민 청장은 “곤궁에 처한 시민을 봤을 때 자연스럽게 (시민의 입장을) 공감할 수 있어야 경찰이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잇따른 검경 갈등에 대해선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최근 울산지검이 ‘약사 면허증 위조 사건’ 수사 결과를 보도자료로 만들어 언론에 배포한 경찰관 2명을 피의사실 공표죄로 수사 중인 것과 관련해 민 청장은 “피의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그게 (공표한) 사람을 처벌한다고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민 청장이 지난달 “함께 기준을 정하자”고 공개 제안했지만 대검찰청이 하루 만에 “공보규칙은 법무부 소관”이라며 내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민 청장은 “검찰이 수사에 나선 덕에 (피의사실 공표 기준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긴 했지만 방법이 너무 거칠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민 청장은 일선 경찰관이 끔찍한 사건이나 사고를 겪은 뒤에도 사회적 낙인을 두려워해 트라우마 치료를 꺼리는 일이 없도록 솔선수범해 공개적으로 ‘마음동행센터(트라우마 치료 센터)’를 이용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민 청장은 “이미 센터에선 상담 기록을 남기지 않고 무료로 경찰관의 트라우마를 살피고 있지만 그래도 일선 경찰관이 느낄 수 있는 망설임을 없애기 위해 저도 한 번 가야겠다”라고 말했다.
민 청장은 인터뷰 말미에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손바닥만 한 종(鐘)을 들어 보였다. 종에는 ‘국민의 경종(警鐘)이 되소서’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지금의 경찰청장)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후 1947년 경찰 기관지인 ‘민주경찰’ 특호에 쓴 휘호를 옮긴 것이라고 한다. 민 청장은 “심란할 때마다 종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다.
이종석 wing@donga.com·조건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