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DB
광고 로드중
수많은 집 허물어 연못 하나 만들고/ 복숭아 자두 대신 장미를 심었구나.
장미꽃 지고 가을바람 불 때 되면/ 정원에 가시만 가득한 걸 그제야 아시겠지.
(破却千家作一池, 不栽桃李種薔薇. 薔薇花落秋風起, 荊棘滿庭君始知)
-‘흥화사 정원에 부치는 시(題興化寺園亭)’ (가도 779~843)
민가를 허물고 거대한 연못을 조성한 것도 못마땅한데 그 주변에 심은 나무를 보니 더욱 고약스럽다. 경관을 위해서였다고 해도 왜 하필 유실수도 아닌 관상용 장미인가. 기록을 보면 이 시는 가도가 과거에 낙방한 직후, 당시의 재상 배도(裴度)가 흥화사에 개인 정원을 수축한 것을 고깝게 여긴 나머지 그 담벼락에다 화풀이로 써놓은 거라고 한다. 그래서인가, 재상을 향한 한 서생의 신경증적 비아냥이 섬뜩할 정도로 선명하다.
이 시기는 안사의 난을 겪은 여파로 피폐 일로를 걷던 상황. “부자는 넓디넓은 토지를 차지하고, 빈자는 발 디딜 땅 한 조각 없다”는 원성이 자자하던 때였다. 시는 이렇게 배도를 비꼬고 있지만 기실 배도는 성품이 강직하고 치적도 뛰어나 20년 재상을 지낸 중당(中唐) 중흥의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경위야 어찌되었건 백성의 삶을 도외시한 채 사치에 빠진 상류층의 한 단면을 고발하려는 시인의 메시지가 불손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개인적 넋두리라기보다는 사회 집단의 울력 같은 것이어서가 아닐까.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