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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한톨의 250분의 1… 미래 키우는 ‘전자산업의 쌀’

입력 | 2019-06-17 03:00:00

삼성전기 MLCC 부산공장




부산 강서구에 위치한 삼성전기 부산사업장 내 클린룸에서 작업자가 일하고 있다. 삼성전기 제공

13일 찾은 부산 강서구의 삼성전기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생산공장. 바삐 움직이는 기기들 사이로 아주 유심히 살펴야만 생산 중인 MLCC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일부는 생산 과정을 비춰주는 카메라로 보아야 할 만큼 크기가 작다. ‘전자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MLCC는 전자제품의 내부에서 전기의 흐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방해 전자파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가장 작은 제품이 머리카락(0.3mm)보다 얇은 가로 0.4mm, 세로 0.2mm로 쌀 한 톨 크기의 25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부는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물체인 유전체와 전극이 겹쳐 500∼600층이 쌓여 있는 첨단 부품이다. 300mL 와인잔을 채우는 양이 수억 원을 호가하는 고부가가치 부품이기도 하다.

MLCC는 스마트폰과 TV, 가전제품뿐 아니라 전기자동차 등 반도체와 전자회로가 들어가는 모든 제품에 필요하다. 스마트폰에는 1000여 개, TV는 2000여 개, 자동차에는 1만3000여 개가 들어간다. 1999년부터 21년째 MLCC를 생산하고 있는 삼성전기 부산공장은 약 26만 m²의 땅에 20여 개 건물이 들어서 있다. 5000명이 넘는 인원이 근무하는 부산지역 최대 사업장이기도 하다.

생산은 작은 불순물 침투도 어려운 ‘클린룸’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유전체 파우더와 재료 등을 혼합해 만든 슬러리(고체와 액체를 섞어 걸쭉한 상태)를 필름 위에 균일하고 얇게 코팅한 다음 세라믹 시트에 내부전극 스크린을 인쇄한 뒤 이를 원하는 수만큼 쌓는 과정이 이뤄진다.

완성된 MLCC 중 가장 작은 제품은 머리카락(0.3mm)보다 얇은 가로 0.4mm, 세로 0.2mm로 쌀 한 톨 크기의 25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삼성전기 제공

적층이 끝난 바(BAR·시트들이 적층된 상태)는 밀착시키고 절단한다. 절단된 ‘칩’들은 깨지지 않도록 외관을 둥글게 만든 후 전극재료를 입히고 열처리, 도금을 해 완성시킨다. 출하 직전까지 불량을 확인하고 외관을 선별하는 등 총 16개 과정을 거친다. 짧게는 28일(정보기술·IT용), 길게는 43일(전장용)이나 걸린다.

삼성전기를 비롯한 글로벌 MLCC 생산업체들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시대가 다가오면서 특히 전장용 MLCC에 집중하는 추세다. 세계 MLCC 시장이 올해 14조 원에서 2024년 20조 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현재 MLCC 시장 중 20%를 차지하는 전장용 MLCC는 2024년 약 35%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장용 MLCC는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IT용과 비교했을 때 수명이 더 길어야 하고, 고온(150도 이상)과 저온(영하 55도), 고습도(85% 이상), 고전압 등 극한의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만큼 높은 기술적 난이도를 요구한다. 개발 기간도 IT용에 비해 3배 이상 걸리고, 가격은 3∼10배 더 비싸다. 삼성전기는 전장용 MLCC 사업을 본격 육성해 글로벌 시장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질 계획이다. 삼성전기는 전체 MLCC 시장에서는 일본의 무라타에 이어 2위지만 전장용에 한해서는 무라타, TDK에 이어 3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 부산사업장에 1000여 명의 인력을 신규 채용하고 투자도 늘리고 있다. 1∼4공장에 이어 5공장을 전장 전용으로 증설해 올해부터 가동 중이다. 전장용 MLCC 신원료동도 올해부터 짓기 시작했다.

정해석 삼성전기 컴포넌트전장개발 그룹장(상무)은 “삼성전기는 다수의 글로벌 자동차업체로부터 엄격한 검증을 통과했고 공급을 늘리고 있다”며 “부산과 중국 톈진에서 전장용 MLCC를 본격 공급하면 2022년 전장용 MLCC에서도 글로벌 2위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