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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기업부담 낮춰줬더니… 알아서 65세까지 고용

입력 | 2019-06-04 03:00:00

부드러운 정년연장 비결은
퇴직뒤 임금 낮춰 계약사원 재고용, 고용유지 대신 임금체계 함께 손봐
세대갈등 줄인 경기 활황도 한몫




일본은 한국보다 앞서 저출산 고령화, 인구 감소 등 사회 문제를 겪은 나라다. 특히 그 과정에서 정년 연장을 추진하는 등 모범 답안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정년 연장을 집중 논의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일본의 정년 연장 모델도 주목받고 있다.

일본의 사례는 임금 체계도 함께 손보면서 기업의 부담을 크게 줄이는 방식이다.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가파르게 줄고 경기가 살아나면서 정년 연장으로 인한 세대 간 갈등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일본이 자국 상황에 맞는 모델을 만든 것처럼, 한국도 ‘한국형 정년 연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 정부는 2013년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해 종업원이 희망하면 만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①정년 연장 ②정년 폐지 ③계약사원 재고용 등 세 가지 선택지를 기업에 제시했다. 모든 선택지의 공통점은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임금을 깎는 일종의 ‘임금 피크제’를 활용한다는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기업은 종업원을 퇴직시킨 뒤 계약사원으로 재고용하는 형식을 취했다. 재고용 후 받는 임금은 퇴직 전의 40∼70%였다. 기업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사실상 종업원 스스로 낮은 임금을 받고 더 일할지, 60세에 그만둘지 선택해야 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일본 정부는 최근 만 70세로 정년을 더 늘리는 개정안을 발표했다. 여기에서도 기업을 배려했다. 기존 ①∼③방법뿐 아니라 ④창업 지원 ⑤다른 기업으로 재취업 지원 ⑥프리랜서로 일하도록 지원 ⑦비영리단체(NPO) 활동 지원 등 네 가지 선택지를 추가로 제시했다. 더구나 정부는 65세 정년 연장을 기업에 ‘의무’로 지웠지만, 70세 정년 연장은 기업에 ‘노력’하게끔 했다.

일본에서 노무사무소 TOSS를 운영하는 김승민 노무사는 “한국 정부가 정년을 늘리려면 일본처럼 기업의 부담을 낮춰줘 임금 유연성을 확보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3년 당시 일본 산업계에서도 지금 한국에서처럼 ‘고용 연장 조치가 청년 일자리를 줄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 경단련(經團連)이 2013년 실시한 조사에서 기업의 40%는 ‘앞으로 신규 채용을 줄이겠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우려했던 청년 일자리 감소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두 가지 요인 덕분이었다.

첫째, 생산연령인구가 가파르게 줄었다. 지난해 생산연령인구는 2017년 대비 51만2000명 줄어든 7545만1000명이다.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9.7%로 1950년 이후 가장 낮았다. 일본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되면서 일할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둘째로 2012년 말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경제가 살아나면서 기업의 신입사원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었다. 올해 3월 대학 졸업생 중 취업 희망자 97.6%가 일자리를 구했다. 고교 졸업생의 경우는 98.2%로 더 높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희망하면 거의 전원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선 정년을 연장한 고령층과 신입사원인 젊은층이 세대 간 갈등을 벌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른 국가도 자국 상황에 맞춘 정년 연장을 선택하고 있다. 독일은 현재 65세인 정년을 2029년까지 67세로 연장한다. 숙련공 부족이 워낙 심각해 시니어들의 노하우를 계속 활용하겠다는 목적이 가장 크다. 미국이나 영국은 아예 정년이 없다. 미국 의회는 연령에 따른 고용 차별을 막기 위해 1986년 65세로 규정된 법적 의무 정년을 없앴다. 영국도 같은 이유로 ‘65세 정년’을 2011년에 없앴다.

도쿄=박형준 lovesong@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