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빈. 사진제공|KL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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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에 끝난 두산 매치플레이챔피언십에서 상징적인 장면이 나왔다.
딸을 위해 캐디백을 메고 골프장을 누비는 골프대디는 많다. 대한민국 여자골프에서만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경기를 하다 보면 골프선수와 캐디는 의견이 다를 때가 생긴다. 이럴 때 서로 의견을 조율해가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하지만 말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일이다. 곁에서 조언하는 캐디와 엄청난 부담 속에서 실제로 몸을 움직여 결과를 내야 하는 선수가 판단하는 것이 다를 때도 많다. 그래서 경기 도중 말다툼은 일어난다. 간혹 이것이 지나쳐 경기 도중에 선수가 캐디를 해고했다는 뉴스도 나온다.
선수와 캐디는 고용인과 피고용인 관계다. 타인이라면 언제든지 칼자루를 쥔 선수가 캐디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겠지만 가족이고 아버지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버지 캐디는 자신이 골프선수가 되도록 어린 시절부터 지원했고 힘든 훈련을 지켜본 사람이다. 다른 어느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딸의 성공을 위해 무거운 캐디백을 메고 땡볕 속에서 응원하는 심정으로 곁에서 따라다닌다. 물론 딸도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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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딸의 첫 우승에 큰 역할을 했다. 18번 홀 세컨드 샷을 앞두고 어떤 클럽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딸에게 귀중한 조언도 했다. 경쟁자 이소미(22·SBI저축은행)의 타구가 길어서 그린을 벗어나는 것을 본 아버지는 짧은 클럽을 권했다. 결국 그 선택이 맞았고 연장전에 나가서 우승을 차지했다.
5월 교촌하니 레이디스 오픈에서 KLPGA투어 167번째 대회 만에 처음 우승한 박소연(27·문영건설)도 아버지가 캐디다. “루키 시절 아버지가 캐디를 해주신 적이 있는데 그때의 성적이 좋았다. 아버지 성격이 변하시고 나서 싸우지 않고 좋은 플레이를 하게 됐다. 사실 나는 캐디에게 도움을 구하는 편이 아니라 아버지가 편하다”고 했다. 이번 시즌 다시 캐디백을 맨 아버지는 딸의 티샷이 흔들렸을 때 “괜찮다”고 다독여줬고 용기를 불어넣어줬다. 딸은 그런 아버지가 고마워 우승상금을 받자마자 고급 시계를 선물했다. “첫 우승상금을 모두 아버지에게 써도 좋다”고 딸은 말했다.
2013년 E1채리티오픈에서도 캐디 아버지와 딸의 우승 스토리가 있었다. 주인공은 이번 대회에서 KLPGA투어 통산 300경기 출전을 달성하며 기념식을 가졌던 김보경이다. 당시 딸을 위해 9년째 캐디백을 맸던 아버지는 골프를 전혀 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9번 홀에서 “4번 아이언 대신 7번 우드를 잡아라”고 권유했고 이것이 우승의 원동력이 됐다.
미 LPGA 마라톤 클래식에서 157번의 도전 끝에 우승했던 최운정의 곁에도 항상 아버지 캐디가 있었다. 그 아버지는 경찰관 직업을 포기하고 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캐디백을 매고 8년을 고생했다. 최운정은 “아버지가 최고의 캐디라는 남들에게 보여준 것이 정말 기쁘다”고 우승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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