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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최종찬]노조가 마음 놓고 건설사 협박하는 나라

입력 | 2019-05-14 03:00:00

전국 건설현장서 민노총 소동… 자기 조합원 채용하라며 생떼
애타는 기업, 정부는 수수방관
더 이상 노조는 약자가 아니다



최종찬 객원논설위원·전 건설교통부 장관


최근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아파트 재건축 건설현장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근로자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근로자의 출입을 막으면서 양 근로자 간에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전국 각지의 건설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건설회사에 자기 소속 근로자 채용을 강요하면서 이를 듣지 않으면 건설현장의 법규 위반을 고발하겠다고 위협하고 때로는 물리력으로 공사를 방해한다. 예컨대 외국인 근로자의 신분을 조사해 불법 체류자가 있을 경우 이를 이유로 회사를 겁박한다. 노조가 무슨 권한으로 근로자 검문을 하는가. 한국 건설현장은 정부 권한이 미치지 않는 노조 해방구인가.

공사 추진이 시급한 건설회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노조의 협박에 특정 근로자를 채용하고 임금도 그들이 강요하는 대로 비싸게 지급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건설 근로자의 노조 가입이 급증하고 있다. 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이 수 년 전 8만 명 수준에서 최근에는 14만 명으로 증가했다. 최근 건설단체들이 정부와 국회 등에 문제의 심각성을 애타게 호소하고 있으나 정부나 정치권은 소극적으로 대하고 있다.

사업주가 사소한 불법이라도 저지르면 언론이 크게 보도하고 수사기관, 정치권이 총동원된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경우 수많은 압수 수색과 소환 조사가 이루어진 데 반해 노조의 불법 행위는 별로 문제시하는 것 같지 않다. 폭력 행위로 기업이 근로자 채용도 마음대로 못 하는데 정부는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과연 법치국가인가.

현 정부는 일자리 확보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정하고 대통령이 위원장인 일자리위원회와 일자리수석비서관을 신설했다. 공무원과 공기업의 채용을 대폭 늘리고 추경까지 편성하면서 고용 증대에 역점을 두고 있다. 또 경제성장 과정에서 근로자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다고 판단해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화 등 각종 친근로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근로 여건을 개선하고 근로자 소득을 증대시키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일자리다. 지속가능한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이를 위해서는 왕성하게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한다. 기업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노사관계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경제성장 우선 정책으로 근로자의 권익이 침해됐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민주화운동 이후 노동 관련 제도와 관행은 대부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개선됐다. 최근에는 기존 근로자 보호가 지나쳐 노사 문제가 기업 활동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 국가경쟁력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노동 경쟁력은 조사 대상 140개국 중 120위로 최하위권이다. 우리나라에 투자하려는 외국인이 기업 환경 중 가장 걱정하는 것이 불합리한 노사관계라고 한다.

노동개혁 과제를 나열해 본다. 기업이 적자가 나도 구조조정이 어렵다. 자동차 회사의 경우 제품 수요에 따른 근로자 전환배치도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규직 근로자로 한 번 채용하면 기업이 어려워져도 구조조정을 못 하니 비정규직을 쓸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변화하는 기업 여건에 기업이 신축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 유연성이 증대돼야 한다.

100세 시대를 맞아 정년은 폐지되거나 연장돼야 한다. 생산성과 무관하게 경력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호봉제도가 지속돼선 안 된다. 임금체계가 생산성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 많은 기업이 매년 임금협상으로 심한 노사 갈등을 겪는다. 매년 임금협상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으로 협상 주기는 3∼5년으로 바뀌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과도한 노동시장 개입도 현실에 맞게 수정돼야 한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의 경직적인 시행 등은 기업의 경영 여건을 악화시켜 기존 근로자 해고를 유발하는 등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함께 근로자의 생계 불안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실업수당, 전업, 전직 훈련 등 사회안전망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노동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거창한 제도 개선에 앞서 근본적이고 시급한 것은 산업현장의 불법 폭력행위 근절 등 법과 질서의 확립이다. 이제 노조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정권을 교체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기구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최종찬 객원논설위원·전 건설교통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