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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훈 ‘172cm 작은거인’ 159번 도전 끝에 우승컵 입맞춤

입력 | 2019-05-14 03:00:00

강성훈, 美진출 8년만에 PGA 첫승
계속 컷탈락, 투어카드 상실 수모… 스폰서 떠나 눈물 젖은 빵 먹기도
포기 않는 근성과 땀으로 버텨… 우승뒤에도 “내일 아침 운동 가야”




좌절은 있었지만 포기는 없었다.

강성훈(32·CJ대한통운)이 13일 미국 진출 8년, 159번째 대회인 AT&T 바이런 넬슨에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최경주를 포함해 한국 국적 선수로는 6번째다.

강성훈이 13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트리니티 포리스트 골프클럽에서 끝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AT&T 바이런 넬슨에서 2위 그룹을 2타 차로 제치고 정상에 오른 뒤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댈러스=AP 뉴시스

172cm의 키는 거구들이 즐비한 PGA투어뿐 아니라 국내 무대에서도 단신에 속한다. 그런 그는 필사적인 샷 훈련으로 드라이버샷 평균 300야드에 육박하는 장타력을 갖췄고 ‘정글’에서 살아남았다. 이 대회 그의 드라이버샷 볼 스피드는 173마일로 PGA투어에서도 상위권이다. 올 시즌 PGA투어 평균 볼 스피드는 167마일이다.

강성훈은 중학교 시절 이후 요즘도 매일 밤 손목과 팔 근력 강화를 위해 고무줄 당기기를 한다. 하체 근력을 위해 납주머니를 단 채 달리기도 했다. 국가대표팀에서 그를 지도했던 한연희 전 감독은 “가장 일찍 일어나 가장 늦게 자는 선수가 강성훈이었다. 하루도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고 했다. 하루 12시간씩 일주일 내내 훈련한다는 그는 우승을 차지한 뒤에도 “행복하지만 간단하게 파티만 하겠다. 내일 오전 6시에 트레이너와 운동 일정이 잡혀 있다”고 했다. 그는 17일부터 PGA챔피언십에 참가한다.

제주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다. 싱글 골퍼인 아버지 강희남 씨(69)를 따라 연습장에 놀러간 게 시작이었다. 강 씨는 “성훈이가 ‘나도 쳐보고 싶다’고 해서 며칠 시켰더니 재주가 있었다. 아동용품을 구하기 힘들어 처음엔 여성용 클럽과 장갑, 신발을 구해줬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국대회서 준우승한 그는 중고교 시절 줄곧 국가대표로 뽑혔다. 15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나중에 타이거 우즈를 가르친 세계적 골프 교습가 행크 헤이니에게서 레슨을 받았다. 1년이면 6개월을 미국에서 전지훈련을 하느라 집안이 휘청거릴 정도였지만 아버지는 제주 서귀포시에서 횟집과 양어장을 운영하며 아들을 정성으로 뒷바라지했다. 양어장을 팔아 아들을 미국 유학 보낸 아버지는 “PGA투어 진출을 염두에 두고 영어 공부도 철저하게 시켰다”고 했다.

2007년 프로로 전향해 신인왕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퀄리파잉스쿨을 거쳐 2011년 PGA투어에 데뷔했으나 세계의 벽은 높았다. 첫해 10차례 예선 탈락한 뒤 이듬해에는 30개 대회에서 22번이나 컷 탈락해 투어카드를 잃었다. 친형까지 캐디로 나서기도 했지만 추락을 막지 못했다. 웹닷컴(2부)투어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버텼다. 메인 스폰서가 떨어져 나가 2년 가까이 모교인 연세대 로고가 박힌 모자를 쓰고 출전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2016년 PGA투어에 복귀했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강성훈은 골프 장갑에 ‘오감집중’을 써 넣고 플레이하는 등 멘털 관리와 노하우가 훌륭하다”고 말했다.

강성훈은 2016년 결혼 후 지난해 가을 아들을 얻었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건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가장이 되면서 강성훈은 아들 이름처럼 더욱 ‘강건’해졌다.

안영식 전문기자 ysahn@donga.com·김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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