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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하임숙]나쁜 기부는 없다

입력 | 2019-04-22 03:00:00

유명인-기업에 색안경 다반사… 기부 놓고 선악을 따지지 말아야




하임숙 산업1부장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여전했던 2009년 5월 한국 골프계는 기로에 서 있었다. 기업들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그해 첫 메이저대회인 SKT오픈이 열릴지 불투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후원하는 대회가 열리지 않으면 그해 예정된 다른 대회도 줄줄이 취소될 가능성이 컸다. 박삼구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당시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이 머리를 맞댔지만 도저히 대회를 열 수 없다는 쪽으로 상황은 기울고 있었다.

이 난맥상을 푼 게 프로골퍼 최경주였다. 그는 당시 10억 원 정도 되는 초청료를 포기하겠다고 SKT에 알려왔다. 다음은 최경주의 말이다. “내가 초청료를 포기함으로써 후배들이 대회에 참가할 기회가 생긴다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최 회장은 최경주재단에 2억 원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줄이고 골프대회를 열었다.

최경주가 한 것은 일종의 기부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최전성기였던 세계 톱 골퍼가 받아야 할 초청료를 포기함으로써 그만큼의 돈을 후학을 위해 쓴 셈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늘 어디선가 문제가 생기지만 때로 숨은, 때로 드러나는 ‘선한 의지’로 무리 없이 돌아가는 일이 많다. 기부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런 기부 활동을 놓고 선의를 왜곡하는 시선이 종종 있는 것 같아 불편하다.

얼마 전 강원 지역 화재 때 피해 주민들을 위해 가수 아이유가 1억 원을 내놓은 뒤 연예계와 기업들의 기부 활동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아이유를 놓고 ‘특정 재단을 통해서만 기부를 자주 하는 것을 보니 모종의 혜택을 노린 수상한 기부’라는 비난이 등장했다. 해당 재단이 즉각 ‘아이유는 여러 단체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기부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해명해 금세 없던 일이 됐지만 말이다. 방송인 유재석은 5000만 원을 내놓았다가 ‘벌이에 비해 적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기업들도 기부를 포함한 사회공헌 활동을 할 때 눈치를 보는 경우가 잦아졌다. 기부를 하면서도 액수가 적다고 비난받을까 마음 졸인다. 실제로 한 대기업은 강원 지역 화재에 성금을 내놓으면서 기업의 규모에 맞지 않게 적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발표를 할지 말지 고민하기도 했다. 자금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이 기업이 이사회를 열지 않고도 집행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액수를 하면서도 말이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선의로 포장해 이익을 누리려는 시도가 있지는 않은지 의심하기 때문이다. 또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부자들에게 더 크게, 더 많이 공동체를 위해 내놓으라는 요구가 거세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기부로 개인이나 기업이 칭찬을 좀 받으면, 또 법에 따라 세금을 환급받으면 그건 나쁜 기부인 걸까. 혹시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가 너무 일천한 나머지 기부는 남의 일이라 돈을 많이 번 ‘남’은 당연히 기부해야 하지만 ‘나’는 기부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돈을 내는 것만이 기부는 아닐 것이다. 자신의 현재가 본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의 도움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무엇이라도 사회에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바탕이 된 행위가 모두 기부라고 본다. 전북대 의대에서 가정의학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는 64세의 황하수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 경기 광주시에서 도서관 관리를 하는 55세의 전직 학원강사는 “사회로부터 받은 걸 돌려주고 싶다”는 이유로 제2의 인생을 선택했다. 황 전 본부장은 소도시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싶어 하고, 전직 강사는 학생들의 공부를 다른 방식으로 돕고 싶어 한다. 이들은 기부자다.

기부란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하는 것이란 인식이 퍼지면 좋겠다. 그래야 남의 기부를 놓고 선의냐 악의냐를 따지지 않고 ‘당연하지만 고마운 것’이라는 공감대가 생기지 않을까.

하임숙 산업1부장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