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나지 못하는 ‘마약 중독 쳇바퀴’
○ 교도소에서 마약 배웠다
자영업자였던 안 씨는 2001년 사업 실패 후 필로폰에 처음 손을 댔다. 그는 필로폰 투약으로 투옥되는 일을 4차례 반복했다. 지난해 12월 네 번째 출소 후 필로폰을 투약해 몇 차례 실신한 뒤에야 약을 끊기로 결심했다. 13일 마약 중독자들이 직접 만든 재활공동체 ‘소망을 나누는 사람들 사업단’ 사무실에서 만난 안 씨는 “죽음의 문턱에 서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지만 모든 걸 잃었다”고 했다.
전과가 쌓일수록 안 씨는 세상과 단절됐다. 그의 주변엔 마약사범뿐이었다. 누가 봐도 폐인으로 보이는 안 씨에게 일자리를 주는 곳도 없었다. 세 번째 수감생활을 마치고 2016년 11월 출소했을 때 상선은 ‘출소뽕’과 함께 ‘대포폰’(차명 휴대전화)을 건넸다. 휴대전화에는 마약을 팔아야 할 투약자 연락처가 저장돼 있었다. 투약자들에게 약을 팔라는 얘기였다. 안 씨는 결국 부산에 있는 상선에게서 필로폰을 받아 수도권에 뿌리는 ‘판매상’이 됐다. 마약 판매로 하루 300만 원 가까이 벌기도 했지만 번 돈은 모두 필로폰을 사는 데 썼다.
○ 혼자서는 끊을 수 없었다
마약사범들은 혼자 의지만으로는 마약을 끊을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추모 씨(41)는 필로폰 투약 혐의로 처음 구속된 이후 매일 ‘두 개의 자아’와 싸웠다. 이혼한 후 필로폰에 손을 댄 추 씨는 약 기운이 사라지고 정신이 들 때면 마약을 끊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필로폰 투약으로 2016년 기소됐지만 초범이란 이유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그는 보호관찰 기간에도 수시로 필로폰을 투약했다. 한 달에 한 번 소변검사를 받으러 보호관찰소에 갈 때면 다른 사람의 소변을 준비해 갔다. 보호관찰소에선 약물치료 강의를 한다면서 필로폰을 맞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보여줬다. 한 마약사범은 “선생님, 다이어트 하는 사람한테 ‘먹방’ 보여주는 것 아닙니까”라며 항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추 씨는 “죽지 않으면 중독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두 번이나 목을 맸다”고 했다.
필로폰 투약으로 4차례 처벌받은 서모 씨(48)는 2002년 출소 후 3년간 약을 끊었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다시 중독의 늪에 빠졌다. 그는 1999년 필로폰을 투약한 뒤 환각 상태에서 누나를 칼로 위협했다. 이 사건으로 실형을 살고 난 뒤 약을 끊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아무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이사해 마약을 끊었지만 술김에 다시 팔뚝에 필로폰을 찔렀다. 그 뒤로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 노숙을 하면서도 돈만 생기면 마약을 샀다.
전문가들은 마약사범의 재범을 줄이려면 실형을 선고해 단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중독을 치료할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자문위원인 박진실 변호사는 “검찰이 마약 투약자가 치료를 받는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할 수 있고 법원도 치료명령을 선고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며 “마약 중독은 뇌질환이기 때문에 악순환을 끊어내려면 반드시 치료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