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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의 재발견]〈97〉대가와 대까

입력 | 2019-04-10 03:00:00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게으름의 대가.’

여기서 ‘대가’는 어떻게 발음할까? [대까]로 소리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아래 맥락에서 ‘대가’를 파악한 사람이다.

●게으름에는 대가가 있게 마련이다.

여기서 ‘대가[대까](代價)’는 ‘결과를 얻기 위해 하는 노력이나 희생’의 의미다. 주로 ‘대가를 치르다’처럼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다르게 발음되는 ‘대가’도 있다. 다른 맥락에서는 [대가]로도 소리 낼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뜻은 달라진다.

‘미루기의 천재들’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이름 그대로 어떤 일을 미루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런 예문이 가능해진다.

●미루기의 천재들이라는 책 속에는 게으름의 대가들이 대거 등장한다.

여기서 ‘게으름의 대가’는 자연스럽게 [대가]로 발음된다. ‘전문 분야에서 뛰어나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을 지시하는 말인 ‘대가[대가](大家)’다. 여기서 질문이 생겨야 한다. 소리가 다른 이 두 단어를 모두 ‘대가’로 적으니 혼동된다고. 하나는 ‘대가’로 다른 하나는 ‘댓가(×)’로 구분해 적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우리 맞춤법은 그렇지 않다. 한자어와 한자어 사이에 ‘ㅅ’을 허용하는 예는 아래 여섯 항목뿐이다(본보 2018년 11월 14일자 A32면 참조).

●숫자, 횟수, 셋방, 곳간, 툇간, 찻간

이렇게 한정 짓지 않으면 표기법상으로 더 많은 복잡성이 생겨나기에 생긴 규정이다.

우리에게는 ‘대가’로 적는가, ‘댓가(×)’로 적는가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 있다. 앞서 ‘대가’의 발음을 혼동했던 것은 이 단어가 쓰인 맥락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대가’를 더 큰 언어 단위인 문장에 넣었을 때 우리는 맥락으로 [대가]와 [대까]의 발음을 자연스럽게 구분할 수 있었다. 맞춤법을 단어를 넘는 관계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