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못난 힘’으로 쓰는 것… 결핍-상처 등 직시해야 나와 한국에선 시가 ‘청춘의 장르’, 만년작의 잠재력도 돌아봐야
여섯 권의 시집을 낸 김언 시인은 “표정 없이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세상을 이야기하는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시에 대한 기록이자 한 시절에 대한 기록’
시론은 시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이다. 모든 시인이 시론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출간 시집이 꽤 쌓이고 시에 대한 생각이 정리돼야 써낼 수 있는 글 같다. 흥이 붙으면 시처럼 춤추듯 글이 나오는데 그렇지 않으면 문장이 뻑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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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잘난 힘이 아닌 못난 힘으로 쓰인다. 결핍과 상처로 가득한 밑바닥을 뚫고 내려가 보잘것없는 짐승에 불과한 자신을 직시해야 한다. 한데 그 작업이 쉽지 않다. 못난 힘으로 인해 생이 흔들리는 이들이 예술가 또는 범죄자가 되는 것 같다.
○ ‘황지우’
공대에 진학했는데 문학병에 들었다. 그런 내게 국문과 친구가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년)를 추천했다. 교과서 속 시와 다른 자유로운 작품 세계에 해방감을 느꼈다. ‘시를 써도 된다’는 허락증을 받은 기분이었다.
○ ‘난해시는 비평가가 맨 마지막에 꺼내드는 레드카드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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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는 청춘의 장르’라는 저주’
한국에서는 유독 시가 ‘청춘의 장르’로 고정돼 있다. 기형도 백석을 포함해 현재 활동 중인 대다수 시인의 대표작은 첫 시집이다. 운동 신경처럼 시적 원천도 갈수록 고갈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만년작의 잠재력도 풍부하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73세에 노벨상을 받은 후 시집 3권을 더 펴냈다. 우리도 만년작의 신화를 개척해야 한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