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과의 코드로 버티는 강경화 장관…집권 중후반 외교 난제 감당할 수 있나
이승헌 정치부장
그런데 잠시 나오더니 들어갔다. 강원 산불이라는 초대형 이슈가 터졌다지만 예상보단 빨리 꺼졌다.
각종 외교 결례에 이어 이번엔 ‘구겨진 태극기’로 국제 행사를 치른 외교부의 수장 강경화 장관 얘기다.
이 정도면 강 장관에겐 독특한 생존 비법, ‘강경화가 사는 법’이 있다고 봐야 한다. 대안 부재라든지, 새로 임명하면 또 다른 부실 검증 참사가 두렵다는 것 말고 본질적인 이유 말이다.
기자는 우연히 외교부 관계자를 통해 그 이유 중 하나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강경화 외교부의 핵심이자 북핵 수석대표인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통해서다. 이 본부장은 4일 ‘문재인 정부와 한반도 평화 이니셔티브’ 국제학술회의에서 “(북-미) 대화가 재개될 때 ‘조기 수확(early harvest)’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기 수확’이란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지난달 17일 언론에 꺼낸 개념으로 완전한 비핵화로 가기 전에 제재 완화 같은 성과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외교부 내 북핵 전문가들은 청와대가 ‘조기 수확’을 거론했을 때 내부적으로 뜨악해했다.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 전 제재 완화 불가를 외치는 미국의 반발이 뻔하기 때문. ‘조기 수확’은 2005∼2007년 6자회담 때 사용했던 개념이라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받아들이기 어려워 한미 공조에 도움이 안 된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럼에도 수시로 워싱턴을 드나드는 이 본부장이 어느새 ‘조기 수확론’ 전도사가 된 것이다.
이는 청와대와 부처 간 정상적 수준의 호흡을 넘어, 어떤 상황에서도 청와대와 신속하게 코드를 맞출 수 있음을 보여준 강경화 외교부의 상징적 장면 중 하나라고 기자는 생각한다. 앞서 강 장관이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미국이 북한에 요구한 건 핵 폐기가 아니라 핵 동결” “북한과 미국, 한국의 비핵화 개념이 같다”며 듣는 이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는데, 이 관점에서 보면 왜 이런 말을 하고 다니는지 미스터리가 풀린다.
하지만 청와대가 언제까지 외교안보 이슈를 만기친람할 수 있을까. 집권 중반기를 넘어갈수록 외교 이슈는 더 많아진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각론을 다루는 경우다. 외교 전문가의 본격적인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때도 주파수가 맞는 ‘셀러브리티’형 외교부 장관으로 버틸 수 있을까. 외교부를 지금처럼 무슨 용역업체 비슷한 조직으로 두면 태극기 사태에서 보듯 기초 체력이 허약해지고, 나중엔 쓰려고 해도 쓸 수가 없게 된다.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진지하게 강 장관과 외교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한다. 마라톤 게임이 된 북핵 문제에 대처하는 것은 물론 문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도 말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